싸우지 마세요, 제발

투병(鬪病)말고 친병(親病)을

by 이앙꼬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그 앞뒤로 개천절과 한글날이 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참 친절하고 자상하고 배려도 깊다. 어정쩡하게 빈 중간의 하루를 대체 휴일로 더 얹어 주었다. 그로서 유례없이 긴 연휴가 완성됐다. 장장 9일, 지금까지 누렸던 그 어떤 휴가도 이렇진 않았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연휴 시작 전부터 고민이 깊었다.


명절은 6일이다. 당일 추석 특별미사는 오전 6시와 10시, 두 번 있다. 나는 6시 미사에 갔다. 집에서 할 일이 좀 많았다. 차례상을 차려야 했고, 음, 차례상을 차려야 했다. 어머니 몰래 오롯이 혼자 힘으로만 해야 하니 그 하나만도 정말 큰일이다. 물론 누가 보면 배를 잡고 웃을 만큼 엉터리 차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차례상은 엄연한 차례상이다.


우리 본당에서도 차례상을 차려 낸다. 온갖 종류의 과일이며 떡에 요즘 보기 드문 총천연색 옥춘당까지 제대로 갖췄다. 여느 양반가에도 뒤지지 않는 상차림이다. 외형은 압도적이고 내실은 풍성하다. 조상님들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 넣은 신위도 양옆에 도열했다. 나도 이번엔 잊지 않고 아버지의 존함을 적어 넣었다. 봉헌자도 기도자도 안드레아 코르시니다.


이른 미사는 보좌신부님께서 집전하셨다. 명절이어선지, 차례상을 앞에 두어선지 신부

님도 조금 들뜬 표정이셨다. 신부님께선 신자들과 나누는 인사를 ‘찬미 예수님’ 대신 ‘해피 추석’으로 바꿔 보자고 제안하셨다. 근데 실제 해보니 조금 어색하긴 했다. 분위기가 급이상해지자 신부님께서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신다. “이번 추석 땐 싸우지들 마세요.”


게서 그치지 않고 몇 말씀 더 하셨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났으면 못다 한 정을 나눠야지 왜들 그렇게 싸우세요. 이번 추석엔 제발 그러지들 마세요.” 조금 뜬금없다 싶기도 했지만 그건 또 나름 일리가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명절이면 유난히 가족 간 싸움이 잦고 때로 극단적인 사건으로까지 비화하는 경우도 많다는 보도는 이미 흔해진 세상이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싸운다. 그와 관련한 DNA라도 타고난 것 같다. 온갖 핑계를 대지만 우리가 싸우는 가장 큰 원인은 탐욕일 것이다. 한정된 재물을 놓고 저마다 흑심 품은 사람들끼리 경쟁하다 보니 자연히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은 싸움에 능한 자들이다. 승률 좋은 격투기 선수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흔히 병과도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투병(鬪病)이란 말은

그렇게 생겨났다. 그런데 막상 내가 병이 드니 그게 그럴 일인가 싶었다. 더군다나 다른 병도 아닌 암이다. 치료법은 고사하고 아직 그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미답의 질병이다. 그런 상대와 싸우면 승산이 있을까. 그 무소불위의 세포 덩어리를 과연 싸워서 없앨 수 있을까.


암세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죽은 듯 숨어서 그 몸 주인의 건강상태나 면역력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수술 잘 마치고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은 건 그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싸우지 말고 친해지는 건 어떨까 싶었다. 잘 어르고 달래서 친구가 되어 보기로 했다. 그게 용케 통했는지 지금까진 그럭저럭 지내왔고 아직까진 그만저만하다.


예수님께서는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루카 11.21)”고 하셨다. 상대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이길 수 있다. 굳이 싸우지 않더라도, 힘 하나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도 그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승리의 전략이라고 격찬하지 않았던가.


예수님께선 악한 영을 억지로 내보내면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돌아온다고 경고하셨다(루카 11.26 참조). 싸워서 이기기보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그게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신부님 말씀이 옳다. 병이랑도 친구가 되는 판이라지 않는가, 그러니 제발 싸우지들 말자. 추석에만 말고 1년 365일, 우리들 숨 쉬며 사는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