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디자인

BETWEEN EIGHT 에피소드 4

by designwalkers

보통 내 일과는 원단 시장으로 출근해 새로 나온 원단이 있는지 찾아보거나, 주문한 샘플 원단과 부자재를 수급하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점심쯤 사무실로 돌아와 신상품을 기획하거나 작업 지시서를 작성한다.


지금 같은 12월은 원단 시장을 매일 돌기보다는, 어떤 디자인으로 봄 샘플을 진행할지 고민하며 돌아올 봄 상품을 기획하는 시기라 시장을 자주 찾진 않는다. 대신 날을 잡아 하루 종일 시장을 돌며, 신상품에 사용할 만한 원단을 폭넓게 수거해 오곤 한다.


흔히 간절기라 불리는 봄과 가을은, 예전과 달리 계절의 변화가 너무 뚜렷해진 탓인지 해가 갈수록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업체가 딜레마에 빠진다. 계절이 바뀌니 당연히 신상품을 출시해야 하지만, 저조한 판매율과 재고 부담 때문에 마냥 많은 제품을 내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매출을 높이려는 노력보단, 겨울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연결 다리 정도의 상품으로 구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짜기도 한다.


하지만 해가 바뀐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다 보니, 디자이너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고 머리 아픈 계절은 단연 봄이다.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아이템 중 하나는 셔츠다. 셔츠는 두꺼운 이너를 대신해서 단독으로, 혹은 레이어드 아이템으로 입기 좋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셔츠를 만들어야 하는가?


셔츠를 즐겨 입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셔츠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단순히 시각적인 부분으로 나눠 보면 기본적인 솔리드 셔츠, 스트라이프 셔츠, 체크 셔츠, 패턴 셔츠 등이 있으며, 거기에 다시 소재별로 나누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원단이 사용된다.


모든 옷은 소재에 따라 실루엣이 달라지지만, 셔츠는 더욱더 그렇다.

먼저 솔리드 셔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코튼이 있고, 다시 코튼/레이온, 코튼/나일론, 코튼/폴리, 레이온/나일론 등 다양한 혼방 원단들을 사용한다. 각 원단의 특성과 두께 차이는 옷의 디자인과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준다. 스트라이프 셔츠 역시 여러 소재의 원단이 있으며, 거기에 더해 스트라이프의 간격과 컬러에 따라 무수히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체크 셔츠는 또 어떠한가? 여러 소재별 원단에 마드라스, 깅엄, 타탄, 글렌 등 다양한 패턴과 컬러, 사이즈들까지 더해지면 그 종류는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문제점을 체크해야 한다"라고 할 때 사용하는 '체크'와, 체크 원단에서 사용하는 '체크'. 이 둘의 어원은 모두 서양 장기인 체스라고 한다. 체스판의 흑백 격자무늬에서 체크무늬가 유래했고, 체스 경기 도중 왕이 위협받는 상황인 체크(Check)에서 '확인하다', '점검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고, 왕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승부가 결정되는 완벽한 승리의 순간을 '체크메이트(Checkmate)'라고 부른다.


나처럼 대중적인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디자인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디자인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원단을 찾거나, 반대로 원단을 먼저 보고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셔츠는 구조적으로 단순하다. 정면 중앙은 단작(플라켓)을 만들어 단추로 여미고, 넥라인에는 카라를 달고, 소매 끝은 카우스(커프스)를 달아 마무리한 우븐 원단의 옷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디자인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변주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업체가 제안하는 OEM 제품과 우리가 역으로 제안하는 ODM 제품으로 나뉜다. 신상품을 디자인한다는 건 결국 업체에 제안할 상품을 기획하는 일인데, 셔츠의 경우 나는 원단을 먼저 보고 디자인을 짜는 방식을 선호한다.


우선 시장에서 가져온 원단들 중, 봄에 쓰기 좋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몇 가지 추려낸다. 그런 다음 지금까지 작업했던 셔츠 작업 지시서와 틈틈이 모아 왔던 레퍼런스들을 참고해 원단과 매칭시키며 디자인을 수정해 나간다.


하지만 디자인 수정이라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지는 않다. 일단 핏은 어떻게 할까? 요즘은 어떤 핏이 반응이 좋을까? 슬림하게 갈까? 아니면 루즈한 게 나을까? 그럼 기장은 또 어찌할까? 여전히 흐름은 크롭 기장인 것 같은데…. 이렇듯 어떤 무드로 옷을 정할지, 또 어떤 하의와 매칭하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물론 핏에 따라 사용되는 원단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레이온/나일론 혼방 원단의 경우, 차갑지만 유려하게 흐르는 특성이 있어 기장이 길고 여유 있는 핏에 더 잘 맞는다.

디자인에 맞는 원단을 매칭하고 대략적인 핏을 정한 후엔, 과연 어떤 디테일을 넣어 ‘요시랭이’를 부려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포켓을 넣을까? 하나만 넣을까? 아님 양쪽에? 단작은 한 번 접을까 말까? 단작 끝에 스티치를 한쪽만 넣을까? 아님 양쪽에? 소매 카우스에 단추를 한 개? 두 개? 견보루는 넣어, 말아? 단추 간격은? 단추 사이즈는? 카라에도 단추를 달아, 말아? 등판에 절개를 넣어? 그럼 주름도 넣을까? 절개에 스티치는? 넣어, 말아? 등등…. 부위별로 디자인을 넣을지 말지, 넣는다면 어떤 식으로 넣을지 결정하기 위해선 또 한 번 산 넘고 물 건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세한 부분들이 정해지면 먼저 샘플 원단을 주문한다. 그 후 도식화를 그리고, 각 부위의 사이즈 스펙을 기입해 '샘플 작업 지시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래처님, 부디 이 제품을 선택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원단을 가장 먼저 주문하는 이유는 보통 다음 날 바로 픽업이 가능해서지만, 가끔 재고가 없을 땐 며칠씩 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주문한 샘플 원단을 픽업하고 그에 어울리는 단추까지 골라 챙긴 후 공장으로 향한다. 사장님께 맡길 샘플에 대해 꼼꼼히 설명한 뒤, 적당한 아부성 발언과 "새해에는 대박 날 거예요!" 같은 시답지 않은 호언장담을 건네며 과정을 마무리한다.


Checkmate!


이 과정이 셔츠 하나를 샘플링하는 대략적인 프로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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