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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Apr 18. 2020

소통과 교감, 그 어떤 조건도 전제될 필요가 없는

<미스 스티븐스>, 두 인물의 특별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보편적 이야기

* '씨네리와인드'에 발행된 글입니다. 하단에 링크를 첨부해 뒀습니다.




'미스 스티븐스' 포스터 / 출처 : 네이버 영화

우리는 곁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 중에 자신의 진실된 내면을 드러내어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냐는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내놓기란 어렵다. <미스 스티븐스>는 그 ‘누군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영어 교사 레이첼 스티븐스와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인 빌리는 학교에서 늘 만나며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다. 그러나 둘은 연극대회가 진행되는 삼 일 동안 서로의 진실된 모습을 처음 보게 되고 끝내 긴밀한 교감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는 학교를 벗어난 공간에서 비로소 이뤄진 감정의 해방에 이어 선생과 학생 그리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흐리며 쌓아 간 진심의 소통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사소하지만 가장 진실과 가까운 암시

'미스 스티븐스' 스틸컷 / 출처 : 네이버 영화

<미스 스티븐스>는, 우리는 누군가와 “매일 같이 지내고 별 얘기를 다 해도 서로에 대해 아예 모르”며 “진실한 대화는 10분도 못 해봤다”고 얘기한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긴다. <미스 스티븐스>는 인물의 내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불현듯 드러나는 작은 변화들을 모두 세심하게 화면에 담는다. 인물의 호흡의 길이, 음성의 톤과 떨림은 물론 얼굴의 움직임, 눈빛의 온도, 시선의 방향, 몸의 움직임과 작은 행동까지 모두 암시가 된다. <미스 스티븐스>는 그 암시들을 끈기 있게 화면에 담기만 할 뿐, 절대 인물의 심리에 대해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사소하지만 가장 진실과 가까운 그 암시들을 계속해서 포착해야 한다. 엔딩에 이르러서까지 인물의 달라진 내면을 역시 관객이 직접 추측하며 파악하기를 기대하는 듯 평행편집(서로 다른 장소 및 다른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을 교차로 연결하는 편집 기법 포함)을 활용하여 인물의 몸의 움직임과 표정을 은밀히 제시한다.


또한 <미스 스티븐스>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상징을 활용한다. 레이첼의 차는 곧 그녀 자신을 뜻한다. 학교로 출근하는 레이첼 차 안, 불이 들어온 경고등에 이어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며 불안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레이첼이 화면에 담긴다. 불안감은 직장인 학교에 와서도 이어지지만, 그녀는 학생들과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해야 할 일을 애써 해낸다. 그녀의 차 안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는 모습은 그렇게 괜찮은 척 해도 아직 풀어지지 않은 가슴속 슬픔의 멍울로 인해 지속되는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상징한다.



학교에서 벗어나 감정의 해방

'미스 스티븐스' 스틸컷 / 출처 : 네이버 영화

연극 대회장으로 향하는 레이첼의 차 안에서 빌리는 경고등을 발견한다. 그는 그녀에게 경고등이 켜져 있다고 알리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며 초반부에서도 그랬듯이 경고등을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은 이대로 버틸 수 없다는 듯 타이어가 터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당황한 나머지 학교에서는 욕을 하는 빌리에게 주의를 주던 레이첼은 자신도 모르게 연달아 욕을 내뱉고 만다. 이는 그녀가 대회장으로 향하면서부터 학교 안에 있을 때와 달리 “감정의 자유”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나타낸다. 학교를 벗어나자 진솔한 감정도 해방되고 외면하던 문제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공간에서 경고 신호에 한계가 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편 빌리는 학교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하나둘 발견한다. 그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흥미보다는 소통의 욕구에 기반한다. 그녀의 내밀한 신호(경고등)를 발견한 그는 다음날 그녀가 차 수리하러 갈 때 대회 리허설까지 빠지며 동행한다. 가는 차 안에서 그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사적인 질문들을 마구 던진다. 둘은 결국 차 수리하는 시간 동안 선생과 학생 간에 오가야 하는 대화가 아닌,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솔직한 대화를 하게 된다. 따라서 빌리가 레이첼의 차와 계속 관련성을 보이는 것 또한 상징적이지 않을 수 없다. <미스 스티븐스>에서 그는 유일하게 그녀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그녀의 내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다.



소통과 교감, 그 어떤 조건도 전제될 필요가 없는


'미스 스티븐스' 포스터 /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이첼과 빌리는 더 나아가 정서적으로도 교감하게 된다. 그녀가 괜찮지 않은 상태인 것을 눈치챈 빌리는 바로 그녀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둘은 함께 침대에서 방방 뛰어오르고 심지어는 침대와 바닥을 오르내리며 신나게 아이처럼 뛰논다. 마치 아이처럼 단순한 행동으로 순식간에 웃음꽃이 피는 성인(레이첼)의 모습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흐린다.


또한 이 장면은 연극 대회장에서 처음 만난 다른 학교 교사인 월터와 레이첼의 원나잇 장면과 대조된다. 이 두 장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차이점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이렇다. 두 인물이 저녁 시간이 지나서 만나 침대에서 숨이 찰 만한 격렬한 행동을 함께 한다. 레이첼은 마구 웃음을 터뜨린 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상대방도 그녀가 웃을 때 함께 웃는다. 하지만 상대방의 웃음에는 차이가 있다. 빌리가 레이첼과 함께하는 행위 중에 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보이는 것과 달리, 월터는 웃는 이유가 그녀와 다를 뿐더러 레이첼이 왜 웃는지도 알지 못한다. 빌리와의 장면에서는 두 인물의 쌍방향 정서적 교감이 존재하지만, 월터와의 장면에서는 소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레이첼의 웃음의 진실성과 그 계기에도 차이를 보인다. 월터와의 장면에서 갑자기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은 웃음이 아닌 울음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녀는 그 울음을 감추려 위장하듯 꽤 오랫동안 숨넘어갈 듯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 모습 또한 간간이 우는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상대와 함께 있어도 소통하지 못하는 참담함과 그로 인한 공허함, 외로움과 더욱 깊어지는 슬픔을 형상한다.


레이첼과 빌리는 이후 발코니로 이동하여 더욱 깊은 교감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는 그녀의 깊은 상처에까지 다가간다. 그녀의 꺼내 놓기 힘든 얘기를 시작하게끔 돕고, 공감 어린 눈빛으로 가만히 들어준다. 월터에게는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했던 그녀는 빌리 앞에서 흐느끼며 울고 만다. 그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의 이 같은 모습들은 전형적인 ‘아이’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난다. 그녀는 이 시간을 통해 마음에 켜진 경고등의 원인이 되는 가슴속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는 데 큰 전환점이 된다. 혼자서는 버겁던 이 과정으로 이끈 것은 바로 빌리이다.


'미스 스티븐스' 스틸컷 / 출처 : 네이버 영화

<미스 스티븐스>는 소통과 교감에 있어서 그 어떤 조건도 전제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레이첼이 교감을 이루는 상대는 자신과 같은 성인인 데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월터가 아니라 아이인 빌리이다. 그녀의 생각에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는 마고, 그녀의 외면만 보고 관심을 갖는 웨이터, 하룻밤 이후로는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 없는 월터 등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와 소통에 실패한다. 빌리 또한 자신 또래의 학생들이 옆에 있었지만 이들과는 깊은 교감을 나누지 못한다. 나이와 신분이 다른 이 둘에게 진정한 소통과 정서적 교감이 가능했던 것은 둘이 둘만 있던 모든 시간 동안 선생과 학생 그리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흐렸기 때문이다. <미스 스티븐스>에서는 선생인 레이첼이 학생인 빌리에게 먼저 도움이 되어주는 모습보다 빌리가 레이첼에게 신경 쓰고 위로하는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두 인물은 선생이 학생을 돕고 보살피는 틀에서 벗어나 엔딩에 이르러서는 서로를 위한 조언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빌리와 레이첼은 둘 다 처음에는 ‘대화’와 관련하여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사실은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갈망하고 있는 그들의 속내가 차츰차츰 드러난다. 따라서 둘의 소통에 대한 냉소적 태도는 진정 소통하기를 포기한 마음이 아니라 소통할 누군가를 여태껏 찾지 못해 지친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리고 화면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 또한 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기에 <미스 스티븐스>는 두 인물의 특별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나를 조금만 이해해줄래요?

나를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나를 조금만 사랑해줄래요?

괜찮은 척 했지만, 이젠 말할래요, 참기 힘들어요.

-<미스 스티븐스>의 주제가 ‘Sister Golden Hair’ 후렴구 가사





http://www.cine-rewind.com/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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