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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형 Oct 25. 2020

매력적인 출간제안서의 조건

틈입하는 편집자, 열한 번째 편지

수현, 


편집자는 매력적인 출간제안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틈입하는 편집자’ 워크숍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다뤘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출간제안서를 보면 그 편집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책의 지향과 범위가 대략 가늠되지요. 발행인과 저자를 설득해내는 것은 편집자의 상상력과 실행력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복습해보려고 합니다(대부분 비문학 편집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1. 누구를 설득하는가? 

책도 당연히 그러하지만, 출간제안서도 타깃 독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출간제안서의 독자가 발행인인가 저자인가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은 달라질 것입니다. 발행인 혹은 출판사 내부 구성원(특히 마케터까지)을 설득하기 위한 출간제안서(출간기획안)라면 출판사의 출간 방향에 부합하고 출간 목록을 확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고, 저자를 대상으로 한 출간제안서라면 저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므로, 다음 질문들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신뢰할 만한 출판사인가?(출판사에 대한 간략하지만 효과적인 소개가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의 출간 지향과 출판노동 현실의 일치를 확인하는 저자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나는 저자의 사유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편집자인가?(숱한 출간제안서를 작성하며 우리는 그런 편집자로 성장합니다.) 


2. 어떤 저자인가, 무엇을 사유하는가? 

책의 콘셉트를 구상한 다음에 저자를 찾는 경우가 있고, 저자를 발견한 다음에 책의 콘셉트를 구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그 저자를 제대로 알아야 하며 다음 질문에 대해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가? 저자의 사유는 구체적인 동시에 확장성이 있는가?(국내 온라인서점과 아마존 사이트에서 그 분야의 주요 목록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두 번째 책도 가능한 저자인가?(두 번째 책도 만들고 싶은 저자인가?) 저자의 글을 충분히 확인해보았는가?(주어와 술어를 책임감 있게 구사하는가? 구체적인 목적어를 가지고 있는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비약은 없는가? 중언부언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쓸 수 있는가? 그 글을 읽고 저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는가?)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300매(200자 원고지 기준) 이상의 글로 체계화시킬 수 있는가?(300매를 500매 이상의 단행본 분량으로 만들도록 돕는 것은 편집자의 핵심 역량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저자인가?(편집자 자신의 한계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인가?(편집자의 불편한 질문도 마다하지 않는 저자라면, 지금의 원고는 현재보다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3. 스스로 생존 가능한 책이 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책은 저마다의 생애가 있습니다. 애초에 상상했던 독자들에게 닿아 확산되고 재생산되는 책들이 있는 반면, 애초에 상상했던 독자들이 대개 허상이었음이 밝혀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초기 마케팅이 소멸한 시점부터(대략 출간 후 2~3개월 이후) 그 책 스스로 생존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현실성 있는 판매 목표인가? 내가 독자라면 구입하겠는가? 내가 출판 담당 기자라면 소개하겠는가? 내가 서점 MD라면 프로모션을 제안하겠는가? 이 책의 잠재 독자는 현실 세계 속에 얼마나 존재하는가? 이 책의 주제 분야는 중대형 서점에서 별도의 매대를 갖추고 있는가? 해당 분야의 판매 1위 도서는 무엇이며 얼마나 판매되었는가?(판매 1위 도서와 경쟁할 수 있는가? 그 분야 순위에서 어느 수준까지 진입해야 손익에 도달할 수 있는가?) 경쟁 도서는 무엇인가?(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4. 편집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였는가? 

출간제안서에 책의 가상의 체제(목차를 포함한 책의 구조)까지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편집자는 저자의 텍스트를 깊이 숙고한 후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독창적인 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저자의 텍스트, ‘그다음’ 편집자의 상상력,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편집자의 책이나 아니라 저자의 책이라는 점 말입니다). 물론 그 체제는 하나의 제안일 뿐이며, 혹여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로 하여금 이 제안서를 통해 자신의 텍스트가 단박에 단단한 체제를 갖춘 책으로 상상하게 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제안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저자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한 것일 테니까요. 


5. 완성도를 갖춘 제안서인가? 

책은 물론 편지, 보고서, 출간제안서 등 편집자가 생산해내는 모든 문서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출간제안서의 분량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장 또는 두 장이면 충분합니다. 한 장이든 두 장이든 제안서의 제목, 체제, 논리, 문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저자에게 그것들을 요구하기 전에 편집자가 먼저 실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절제된 여백과 질서를 갖춘 형식 속에 단정한 호흡의 문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합니다. 가급적 두괄식으로 핵심 주장을 담는 것이 좋습니다. 폰트의 장평과 자간까지 세심하게 조절할 정도로 편집되어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대체로 단순한 문장이 효율적이나 그 대상과 장르에 따라 매혹적인 문장도 기꺼이 감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획안의 분량이 적더라도 책의 가제, 구성, 저자(혹은 출판사) 소개, 핵심 콘셉트, 판매 목표, 유사 도서, 마케팅 전략, 집필 및 출간 일정, 계약 조건 등의 핵심 요소들이 누락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책의 꼴을 쉬이 직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눈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너무 거창하게 썼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당연한 것들을 제대로 실행해내지 못하는 우리 현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워크숍의 결론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매력적인 편집자가 되어야만 매력적인 출간제안서도 쓸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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