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중독된 사람들

우울과 위로, 가능성이라는 환상

by 솔립

어디선가 우울도 중독된다는 얘기를 보았다. 마치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인 것처럼, 온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느끼기보다는 컨셉이 맞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으로는 매번 “아, 빨리 여기서 벗어나서 뭐든 해야지.”라고 하지만, 행동은 “나는 우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무기력해. 의지가 없어.”로 나타낸다. 자신이 정해놓은 감정에 지배된 것이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 상태가 지속되고, 망조의 길로 가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병과는 다르다. 그냥 우울한 감정, 우울한 상태에 중독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든가 혹은 극적인 드라마처럼 어떤 행운이 나타나 그것을 잡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우울한가보다.’라고 생각하니, 자신에게 ‘힘내. 파이팅’이라며 위로를 한다. 우울증이 아니라 우울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남들에게 위로의 말을 들으니, 또 위로받는 것에 중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위로를 주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지인들은 매번 자신이 우울해있는 모습에 지쳐 점점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 왜 위로를 안 해주지? 난 우울한 사람인데 위로를 해줘야지!”라면서 하염없이 또 우울한 분위기에 빠지거나 혹은 SNS에 검은 화면, 흑백 사진을 올리고 밑에 ‘우울하다.’는 그 감정을 표출한다. 이 피드를 본 얼굴 모르는 이들은 ‘힘내요. 이겨낼 수 있어요.’라고 한다. 또 다시 랜선 위로에 중독이 되어 그렇게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어 위로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출처 Unsplash @dmitry-schemelev

‘우울’과 ‘위로’ 뿐만 아니라 ‘잠재력’,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이 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인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무명배우가 나왔다. 이 사연이 나오자, 유튜브 영상에 이런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어떤 직업군이든 다 그렇지만 특히 예술 쪽이 이런 상태가 되기 너무 쉽고 무서운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될 수가 있다. 지금 사연자분이 딱 이 상태인데,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걸 애써 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가받았다가 ‘배우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류들은 ‘단지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라면서 능력도 없으면서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며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마음 속 제일 깊은 곳에선 본인도 자신의 실력이 프로가 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다. 단지 성공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딪히면서 성장해나가는 데에 반해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도전도 하지 않는다. 내가 못하는 상태에 직면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아무리 조언을 해봤자 소용없고, 자신이 변하는 수밖에 없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예술계가 아니라도 분명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중독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본인이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까 “힘내”라는 위로 밖에 해주지 못한다. 만약 그 남들과 본인이 친한 사이라면, 본인에게 “야, 되지도 않을 거 다른 길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은 내가 이때까지 일궈놓은 노력을 남이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확 상한다. 물론 그 노력은 온 힘을 다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허울 뿐인 노력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이 이렇게 말해버리면 “네가 뭘 알아? 이 길은 원래 힘든거야.”라면서 진심으로 자신의 길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과 멀리하게 되고, 자꾸만 ‘가능성 있는, 잠재력 있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가능성 조차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계속 그 상태에 중독되어 몇 년을 머물러 있게 되면,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상태로 허송세월이게 될 것이다. 정신차리고 보면 이미 늦은 경우도 허다하다.


출처 Unsplash @kristina-tripkovic

분명 이들은 스스로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건, 빠져나온 후 자신이 감당해내야 할 일들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이 환상이라는 걸 알지만 환상 속에서 부유하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즉, 환상에 중독된 것이나 다름없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해서 우울한 감정, 위로받는 상태, 가능성 있는 상태에서 빠져나온다면,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난 왜 할 줄 아는 게 없지?’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이런 복잡하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에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고,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알고 있다. 언제까지 내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단지 '아직 젊다는 이유'로 아니면 '얻으려는 직업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든 동아줄을 잡고있는 것이다.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아까 그 댓글처럼 아무리 남이 조언해봤자 소용없다. 이들은 자존심은 무척 강하지만 자존감은 무척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현실을 도피하고, 회피하게 되면 결국엔 이 세상이 나를 회피하게 될 수도 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glenn-carstens-pe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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