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정이를 간과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속이 비어있는 쭉정이는 익지도 않을뿐더러 가벼워서 남들 따라 숙이는 척한다.
최악인 건, 쭉정이는 자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줄 안다.
본인이 쭉정이인 걸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에서 쭉정이는 제외해야 하는 말이다. '어폐'라고 하기엔 비약적인 느낌이 있지만, 일부 쭉정이 같은 분들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에 극히 공감하며 '나는 성숙한 어른이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이에 맞게 성숙해지는 것이 어렵지만, 그 어려움에 대해 인지하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쭉정이는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는 비단 4,50대 이상의 어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어린 20대 중에서도 '젊은 꼰대'가 있다. 그들도 '나 때는 말이야~'하면서 자신보다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정치질을 한다거나 마치 인생을 다 산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저런 말을 하는 이유와 심리는 무엇일까?
사람 성향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내세울 건 오직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밖에 없기에 이를 무기로 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이는 힘들이지 않고, 먹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를 무기로 삼아 어린 친구들에게 시답잖은 조언은 하지 않아야 좋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특성상 '나이 문화'에 기저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 살 많은 선배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예의를 갖춘다. 집에 있는 10살 차이 나는 형제에겐 반말을 하면서도 말이다. 아이러니하다.
이 문화는 우리나라 유교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성과 한음>에서 둘의 나이차는 5살, 류성룡과 이순신의 나이차는 3살이었지만, 그 둘은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에는 10살 이상의 차이라도 편하게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비록 그들이 존댓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1살 차이라도 불편한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나이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상대방의 나이를 알고 싶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이를 묻고 나서 그 행동이다. 서열을 따지는 나이 문화의 싹을 잘라내려면 애초에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나이를 알고 나서도 우열을 따지지 않는 '성숙한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등학생들, 유치원생들도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다." 고도 얘기한다. 마냥 웃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특성의 '나이 문화'가 멀쩡한 벼의 새싹을 쭉정이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쭉정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른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