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시리즈 3 - '방황'이란 이름만 가질 뿐, 실상은 '돈'이다.
방황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지금은 방황해도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이 무책임한 제일 큰 이유는 방황하는 데에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방황'이라는 이름만 가질 뿐, 결국 실상은 '돈'이다.
A와 B의 상황을 그려보자. (극단적인 가상의 예시입니다.)
A와 B는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던 학과에 맞춰서 대학교에 갔다. 그러나 수업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고, 적성과도 맞지 않아서 전공을 업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A는 다른 걸 하고 싶은데, 어릴 때부터 취미로 하던 제빵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제빵을 배워본다.
B는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편입을 고사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용돈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A는 제빵도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3개월 만에 그만둔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방황하던 차에 부모님께서 해외여행을 다녀와보라고 한다. A는 방학 동안에 유럽여행을 떠난다.
B는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추가적으로 인강을 끊어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결국 B는 성적 장학금 몇 십만 원을 겨우 받았고, 남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A는 유럽여행 중 방문한 프랑스에 관심이 생겨 프랑스어를 배우고자 한다. 부모님의 눈치가 보여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며 프랑스어를 배운다. 부모님은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한다.
B는 우연히 공무원 시험에 대해 알게 되고, 부모님께 공무원 준비를 하겠다며 휴학하겠다고 말씀드린다. B는 부모님의 허락을 간신히 받아내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공무원 준비를 시작한다.
2년이 흘러
A는 제빵, 프랑스어, 바리스타, 코딩 등 건들지 않은 게 없지만 정작 이뤄낸 건 없다. A는 졸업 학년이 되어가자 점점 초조해진다. 성적은 처참하고, 스펙이 없어서 대기업은 꿈도 못 꾼다. 그때 공무원은 학벌, 성적을 안 본다는 얘기를 듣고, 드디어 내 꿈을 찾은 것 같다며 공무원에 도전한다. 물론 지원금은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다.
B에게는 복학이 다가왔지만 어느 하나 이룬 게 없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서 그런지,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합격생들과는 성적이 차이가 난다. 합격컷에도 제대로 못 미치는 점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제대로 공부에 몰두하고 싶지만 자취방 월세도 내야하고, 교재도 사야 한다. 결국 B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복학하게 된다.
졸업 후
A는 공무원 시험을 때려치운지 오래다. 부모님도 A가 한심한지 그럴 거면 아버지 밑에서 일하라고 한다.
A는 아버지의 일은 죽어도 하기 싫었지만 지금 A의 스펙으로 다른 기업에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아버지의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출근한다.
B는 어중간한 성적으로 중소기업 여러 군데에 지원한다. 이력서 50개를 작성했지만 다 탈락이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토익도 900점으로 겨우 맞추고,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다른 취준생들은 필수적으로 B와 같은 스펙을 갖추고 있었다. B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고, 자기소개서를 수정한다.
사실 B는 어릴 때부터 재능 있었던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땐 미술 학원비가 너무 비싸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지금 미술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는 건 큰 무리이고, 성인반으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다시 학원비를 알아보니 이 조차도 부담이 되었다. 결국 B는 나중에 취업하면 꼭 배워야지 하며 씁쓸한 위로를 한다.
A는 제빵, 프랑스어, 바리스타, 코딩, 공무원 준비 등 하고 싶은 것들을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배웠다. 그리고 긴 방황 끝에 정착한 곳은 아버지의 회사였다. B는 사정상 아르바이트라는 끈은 놓을 수 없었고, 공무원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취준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A, B 둘 다 방황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B는 방황하지 않았다. B는 되려 방황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황하는 데에는 그만큼의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방황할 수 없었다. 또한 B가 어중간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전혀 노력하지 않은 삶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노력했다.
'20대에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봐야 나중에 어른되서 후회 안 한다.'라는 말은 일부 사람에게만 공감되는 말이지, B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방황하기에는 지금 내 삶이 너무 바쁘고, 전부 다 돈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기엔 B에게는 돈이 없다.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해외여행, 학원, 취업 준비가 눈에 들어올까? 이 세상에 A에 가까운 사람이 많을까? B에 가까운 사람이 많을까?
여느 에세이 베스트셀러 중 '방황해도 괜찮다.', '조금은 즐겨도 괜찮다.' 라는 말은 모두에게 공감을 일으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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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