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기로 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by 솔립


출처 Unsplash @cherry-lin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6집 reputation 앨범 전문을 이제야 읽어봤다. 그 중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놀랐던 부분만 가져와보려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버전'의 모습만을 알 뿐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이 어떤식으로 비쳐보이는지를 알지만, 그들의 연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지 못하죠.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연인은 우리가 그들을 친구로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하죠.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의 룸메이트가 바라보는 것과 다르게 그들을 알고, 그들의 룸메이트는 그들의 직장동료와는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죠.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 알고 있는거예요.




이 대목을 읽고,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숭이나 가식 없이 가장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가족에게서조차도 나는 내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우리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나의 모습. 우리는 가족 중에서도 엄마를 대할 때에도 아빠를 대할 때에도 그 모습이 다르다. 또, 같은 친구라도 10년 친구와 1년 친구와 대화할 때에도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어떤 친구냐에 따라서 말투나 행동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던 친구가 있었고, 정적이 어색해서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 친구 사이의 관계 때문에 태도가 달라졌던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 친구에게 보여주기로 한 모습 때문에 관계가 달라졌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후자의 친구에게 전자의 친구처럼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관계가 편해졌을 수 있었을까?


출처 Unsplash @jason-leung



난 말이 없는 편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굉장히 꺼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나를 굉장히 차분하고, 착한 사람으로 바라봤다. 이 때도 나는 내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날 착한 이미지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완전히 알지 못하듯, 나도 그들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악한 모습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약한 모습이 있을 수 있고, 소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강단있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 그저 그들이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악한 이미지, 소심한 이미지로 판단했던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단면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그걸 어기고 어떤 이미지로 단정지어 사람을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다.




너한테 이런 모습도 있었어?

걔는 전혀 그럴 애가 아닌데...

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못된 애는 아니야.



이렇게 한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인식해버리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에서 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저 그가 '자신이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을 달리 했을 뿐인데 우리는 또 다시 그의 이미지를 또 다시 바꿔버린다.


혹은 회사에서 짜증나는 상사가 있다고 가정해보면, '저 상사랑 같이 사는 사람은 피곤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잘 해주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회사에서는 다정한 모습의 동료지만 집에서는 화가 많은 모습의 동료일 수 있다. 그들이 각 장소, 상대방에 따라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6집의 테일러 스위프트 / 8집의 테일러 스위프트


우리는 절대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최악과 최고의 모습들의 모자이크에요.
...
우리는 모두 이기적임과 관대함, 의리와 자기보호, 실용성과 충동성의 혼합체예요.


테일러 스위프트도 그랬다. 어릴 때 연예계에 발을 들였던 그녀에게는 초창기의 컨셉 때문에 항상 착한 소녀, 성실하고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 소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녀의 수많은 모습 중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기로 선택해서 보여준 것 뿐이다. 그리고 컨셉이 바뀌고, 사생활 문제도 대두되자 대중들은 하나같이 실망하고 '데뷔 초의 순수했던 소녀의 모습은 사라졌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 다른 버전의 모습을 보여준 것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 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6집 앨범의 제목이 reputation, 평판이다. 이게 하나의 내 모습인데 대중들의 평가에 따라 내 평판이 좌우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네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 수 밖에 없지 않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애초부터 상대방에게 이 모습 말고도 또 다양한 모습이 있을 거라는 여지를 남겨두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도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 가지각색으로 생각할 수 있다. 틀 안에서 생각하기 보단 그 틀을 없애고 좀 더 유연하게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난 브런치 안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을 선택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문 해석 출처 https://www.dmitory.com/hy/9589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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