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맞서 사랑해야 할 용기

책 <끝까지 쓰는 용기> 리뷰

by 솔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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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계속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지금도 어떻게 써야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투고하고, 어떻게 해서 실물 책으로 나오는지 잘은 모른다.

우선은 책의 한 문장이라도 쓰는 것이 첫 걸음이니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가장 유명한 <끝까지 쓰는 용기>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하기도 하셨고, '글쓰기'관련 책에는 항상 상위에 랭크되어있어 궁금하기도 했었다. 사실 나는 작법서 같은 걸 원했다. 등장인물, 줄거리, 플롯 등에 대한 이야기말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런 작법서가 나의 창의력을 더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나처럼 소설 작가를 꿈꾸는 사람보다는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사람에게 더 맞는 책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작가'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모든 작가지망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은 물론이고 반성까지 할 수 있다.




2.jpg 출처 Unsplash @myke-simon
어휘력은 기계적이고 수학적이라기보다 우연과 순발력, 열정의 소산이지요. 우연과 순발력, 열정을 키우려면 다채로운 상황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해요. 예컨대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만 쓰기보다는,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림 세점, 음악 세 곡을 감상하는 편이 낫지요. 우리의 뇌는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자극과 연결될수록 아름다운 우연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요.…어휘력과 아이디어는 같이 오기 때문에 따로 단어 공부를 하기보다는 이렇게 텍스트 전체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공부가 필요해요. 때로는 없는 단어를 창조해낼 정도로 도발적인 상상력이 필요해요.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선 언어를 뛰어넘어 사유해야 해요.


내 글의 문제점은 똑같은 단어의 반복이다. 접속사를 굉장히 동일한 걸 돌려쓰기를 많이 하고, ~같다라는 표현도 굉장히 많이 한다. 그래서 고치려고 '그래서' 대신에 쓰일 수 있는 말이 뭘까하면서 생각하고 네이버 어학사전을 찾아본다. 이상하게 네이버는 반의어는 잘 나오는데 유의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내 어휘력 부족 탓인 것 같아서 <우리말 어감 사전>을 읽기로 했다.

정여울 작가님께선 단어장처럼 어휘를 습득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텍스트 내에서 찾고, 확장시키는 훈련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책이 와버려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나는 정여울 작가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책만 읽어서는 훈련이 더딜 것 같다. 그래서 핑계지만, 요즘엔엔 '내가 쉬려고 보는 게 아니라, 공부를 위해서 보는 거야!'라면서 넷플릭스를 실행한다.

'때로는 없는 단어를 창조해낼 정도'라는 말을 보니, 아이유 님이 생각났다. 노래는 잘 모르지만 신곡 가사 중에 '세로 질러'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가로 지르다'라는 말은 있어도 '세로 지르다'라는 말이 없어서 아이유 님이 창조해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프린들 주세요>가 떠올랐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라는 틀을 깨고, 어린 학생이 펜을 프린들로 부르는 이야기인데... 계속해서 언어가 창조되면 사람들이 이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유 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적정 수준에서 '세로 질러'는 가사의 앞뒤 문맥도 있고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다들 공통적으로 드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창조된 언어가 고착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익숙해질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많은 단어를 창조해서 지금도 그 단어가 쓰이고 있는 것처럼.


3.jpg 출처 Unsplash @alex-ware
작가의 이야기와 독자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교집합을 이루는 순간, 감동은 태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쓰고 있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진정으로 집중하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거든요. …나의 문제와 세상의 문제 사이에 교집합을 발견할 때요. 나의 문제를 폄하하지 마세요. 사적인 이야기라고 자신의 삶을 낮추지 마세요. 나의 이야기를 중시하되, 나의 삶을 타인의 삶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으세요.


정여울 작가님은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물론 균형잡기가 필요하다. 나만의 사생활이 모두에게 공감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도 사생활이 들어간 에세이를 써볼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아직은 용기가 좀 부족한 것 같다. 나를 싹 벗겨버린 채 내놓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생활이 아예 들어가지 않은 에세이를 쓴 적이 없는 건 아니다. 가족, 회사 등에 관한 얘기를 썼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에세이들이 여기 브런치에 올리면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아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나 싶다. 감정이입이 된 만큼 더 정성스레 쓰고, 몇 번씩은 더 읽어보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걸 느끼지 않았나 싶다. 물론 소재 자체가 독자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을만한 얘기였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시든 나와 독자를 사이에 두고, 글을 매개로 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일인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책이 나오기 전에는 내가 첫 독자이며, 많이 쳐봤자 100명 이내의 사람들만 읽기 때문에 그 소수의 사람들로 다수를 감동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이야기가 독자와 나 사이에 어떤 교집합을 이루는지, 글을 쓰면서도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앞으로 쓸 소설에도. 요즘 나는 에세이를 주장 형식으로 쓰는 경향이 강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강요라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조금 조심을 해야한다.


4.jpg 출처 Unsplash @carli-jeen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서평이 아니라 그 책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를 쓰려고 노력해요. 또 서평을 쓸 때 사회현상이나 유행하는 단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일상적 모습과 책 속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연결해보려고 노력하지요.


고등학교 때 신문부로 활동하면서 사서 선생님 지도 하에 3명의 친구들과 2년 정도 서평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어린왕자>와 다른 책 한 두 권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흔적도 없는 편이지만 다행히 <어린왕자> 서평 쓴 게 아직 남아있었다. 사서 선생님이 자기 멋대로인 경향이 있어서 그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쓰긴 했지만, 그래도 꽤 배울 점이 있었다. 서평을 쓸 때는 최대한 자기의 생각을 배제하고 써야 하며, 어떤 키워드가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그때 한 3~4번 정도 수정을 해서 나온 키워드가 '길들임'이었다. <어린왕자>를 3번이나 읽고 서평도 썼지만 아직도 이해를 못해서 다음에 읽게 되면 서평도 함께 올려볼 것이다.

작가님께서는 서평으로 문학에 데뷔하셨는데, 다른 장르도 아니고 서평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책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 방향을 보여주었고 일상생활을 연결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에세이나 심리학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신다.


5.jpg 출처 Unsplash @romain-v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걱정거리와 아픔으로부터의 거리 두기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글을 전혀 쓰지 않았더라면 저는 성질이 급하고 편협하고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요. 작가가 되지 않아도 글쓰기는 삶에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최선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는 내적 힘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작가로 살아가는 일'은 재능의 문제를 뛰어넘어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필요로 합니다.…'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라는 자만심보다는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써야만 진정으로 깨어 있을 수 있다'라는 간절함이 작가의 힘입니다.


예민해서 화를 잘 내게 되는 걸 주제로 쓴 에세이를 통해서 나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글쓰기'라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글을 쓰면 내 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고, 내가 이런 문제 때문에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나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육성으로 내뱉는 일은 거의 없고 쓰는 일은 아예 없어서 글로 욕을 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속에서만 뭉쳐있던 욕이 글을 쓰면서 '아, 욕은 안 되지'하면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차분하게 글을 쓰면 마음이 가라 앉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글솜씨가 멋지지 않아서 안된다는 말 대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로 써보는 게 좋다. 일단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작가가 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글은 쓰지 않는 것 같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다. 떠오르는 영감들을 계속 메모해두면서 이런 책을 읽으며 앞으로 쓸 책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핑계가 될까? 예전에는 인터넷 소설 몇 편을 읽고 소설쓰는 것에 빠져서 도전을 여러 번 했었지만, 끝까지 쓰지는 못했다. 이게 트라우마 비슷하게 남은 건지 '내가 끝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작하지 않으면 끝도 없는 법이다. 취재가 다 끝나게 되면 반드시 글을 쓰리라.


6.jpg 출처 Unsplash @gr-stocks-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오해받을 준비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판받을 준비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표현해도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정보만 읽거나, 읽은 문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용기가 굉장히 부족한 F(mbti)로서 이 부분이 항상 두렵다. 글과 관련된 악플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심장이 쿵쾅대고 화가 나면서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공통점이 뭐냐면, 이들의 본거지(?)로 가보면 대체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거다. 이상한 종교를 믿는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브런치에서는 악플을 남기는 사람은 전부 작가가 아니라 독자였다. 그러니까,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어봐야 다른 사람의 글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 텐데 노출된 적이 브런치 작가보다는 드물기 때문에 이를 알지 못하고 욕을 하는 것 같다. 욕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은 이 글이 얼마나 소중하게 한 문장씩 쓰여졌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의 한 대목을 얘기한다. 언어가 아니라 오직 손짓만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던 시절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었지만, 금세 오해를 풀었다고 말이다. 의사소통을 손짓으로만 해야하고, 정확하지가 않다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에 항상 오해할 수 있고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아는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도 사실은 손짓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내가 하는 말 전부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해를 한다. 이 단어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는 걸 서로 모르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탄생되어서 언어는 정확한 표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의미는 정확하다'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언어의 의미는 애매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무시해버리는 것 같다.

이 예시로, <알쓸신잡>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김영하 작가님께서 부산에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강연이 끝난 후 남성분이 다가와서 "이런 거 또 언제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김영하 작가님은 조금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지만, 아내분께서 부산 출신이어서 잘 통역(?)을 해주셨다고 한다. 나는 경남 지방 사람이라서 "이런 거 또 언제합니까?"라는 말이 엄청난 칭찬으로 들린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이런 거'에 포커스를 둬서 기분이 나쁘다고도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언어는 애매하다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같은 문장이라도 누군가는 좋게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나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해가 항상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 '언어는 정확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언어는 애매하다'는 다른 특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견 충돌이 발생되어버리니까 싸움이 되는 것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애초에 생각을 해버리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가 훨씬 쉬워지며 의사소통도 원활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님은 얘기한다. "어쩌면 의사소통 자체가 오해를 단단히 각오할 때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7.jpg 출처 Unsplash @steve-johnson
글을 쓰고 싶고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작가가 원고료 걱정 없이, 생계의 압박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자유'와 '좋은 출판사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문학사상사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저작권을 볼모로 삼아 그릇된 이익을 누리려는 모든 출판사 대표, 작가들을 몇만 부짜리로 환산하며 이익을 따지는 모든 출판사, 작가들의 뼈와 살이나 다름없는 원고료나 인세를 떼먹고 제때 지급하지 않아 단 한번이라도 작가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모든 관계자는 각성했으면 합니다. 문학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작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출판사만이 훌륭한 문학상을 운영할 자격이 있습니다. 작가들이 속속 뜨겁게 연대하고 있습니다. 독자들도 깊이 절실하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해봤자 너만 다친다'라는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니까요.


정여울 작가님은 이 책에서 작가들이 겪은 아픔에 대해서 얘기한다. 김금희 작가가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한 이후 이상문학상의 파행적 운영 방식이 알려졌다고 한다. 그 이후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이 이어지면서 이상문학상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고 한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불리한 계약조항을 내걸었고, 윤 작가의 절필 이후 다른 작가들과 독자들의 항의 끝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런데 꼭 이런 일에는 왜 단 한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해야 바뀌어질까? 아직도 문학계 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언제부터 문학, 예술이 돈벌이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돈벌이가 되었더라면 문학 예술계 중에서 아주아주 부자인 분들이 대거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불합리하게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문학 예술계가 망가지고 있다.

이걸 기억해야 한다.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BTS와 오징어게임, 기생충 그에 앞서서 강남스타일 등이 한국을 알리는 데 애썼지 않을까? 우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작가들이 충분히 편의와 권리를 누리는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에 매진을 한다면 얼마나 더 좋은 문학이 나올까? 고통에서, 슬픔에서, 가난에서 예술이 창조된다고도 하지만 그 창조 이후에도 작가들이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나? 투잡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생존적 본능이 우선일까 창조적 본능이 우선일까? 일단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창의성은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직도 발굴되지 못하고 썩어가는 창의성이 무수히 많다. 썩어가기에 그들은 빛나고 있지만.


8.jpg 출처 Unsplash @etienne-girardet
글 쓰는 일의 좋은 점은 항상 새롭게 자신을 빚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매번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쓸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존재가 되거든요. 또 거꾸로 생각하면, 매번 새롭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세계가 글쓰기이기도 해요. 항상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건 큰일 난다는 뜻이기도 해요. 글이 너무 잘 써진다 싶을 때가 오히려 위험한 거예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닐 수가 있거든요. 익숙하고 쉬운 내용을 나도 모르게 자기복제할 수가 있어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인스타툰이 비슷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한 에세이에서 한 2~3가지의 내용을 적으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예전 글을 보면, 환경에 대해서도 문화에 대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는데, 요즘의 글은 자존감 위주의 글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방향이 잡힌다고도 생각했는데, 작가님의 글을 보니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9.jpg 출처 Unsplash @daniel-jensen
저는 인생에 대해 불평하는 시간이 가장 아까워요. 그 시간은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거든요. '왜 나는 내가 가진 재능만큼 인정을 못 받지?'이런 생각을 하는 시기도 있었고, '나는 재능이 왜 이렇게 없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 돈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속 인간의 생존 조건 자체가 너무나 지옥 같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제 글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독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글쓰기를 포기해요? 그리고 왜 불평을 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정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다. '왜 나는 내가 가진 재능만큼 인정을 못 받지?' '나는 재능이 왜 이렇게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잘 안 풀리지?' '나는 이런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싫어' 이런 열등감과 증오심 덕분에 블로그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소중한 이웃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여서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비록 여기는 브런치이지만...) 이웃님들의 관심, 칭찬, 응원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글을 지금까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내 터닝포인트에 대해 물어본다면 바로 '블로그를 하려고 마음 먹은 때'라고 주저없이 말할 것이다. 터닝포인트라고 말한 건, 그동안 비루했던 내 삶이 바뀔 것이라고 장담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는 내 다짐이 담겨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건, 정여울 작가님이 어떤 계기와 루트를 통해 서평으로 데뷔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가 원고료를 줄테니 서평을 써달라고 제안이 온 건지, 아니면 본인이 출판사나 신문사에 문을 두드려서 서평을 쓰고 싶다고 한 건지...


10.jpg 출처 Unsplash @minha-baek
나에게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요. 글을 쓸 때 '내 글을 단 한 명의 독자만이 읽어주더라도 나는 쓰겠다'라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이 쓴 글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글만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어요.
…첫 책을 내는 작가들은 불특정 다수가 내 글을 읽을 것이라 상정하고 글을 쓰는 실수를 종종 범하곤 하죠. 그런데 사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은 없어요. 자신이 쓴 글에 딱 맞는 독자, 자신의 글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아우라에 딱 어울리는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거예요.…그래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재미있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글쓰기' '내가 가장 나다운 나로 변신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SNS든 숫자로 인기가 증명이 되기 때문에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그렇다. 이번 에세이는 몇 분이 읽으셨네, 이번 인스타는 좋아요 수가 이렇네...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단 한 명의 독자만을 위해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는 감사함도 느끼지만, 아직 내 글을 모르는 혹은 내 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향해 구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상품을 낼 때 타겟을 고려하는 것처럼 책에도 타겟을 정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걸 생각지 못했다. 앞으로 쓰는 글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써야겠다. 사실 불특정 다수를 위해서 중간 중간 사족을 붙여서 글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야 겠다. 사족이 없음으로써 나와 결을 같이 할 사람들이 점점 더 생긴다는 거니까.


11.jpg 출처 Unsplash @fabio-tura
어떨 때 좋은 문장이 나올까요. 제가 아는 것은 세 가지 경우예요. 첫째, 완벽하게 취재가 끝났을 때이지요. …이때 초고나 메모를 반드시 써두어야 해요. 이때 쓴 문장이 완벽하진 않지만 생생하게 살아있거든요. 둘째, 내가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만나 강렬한 충돌을 일으켰을 때이지요. 셋째, 사건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그 일이 나에게 지니는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이지요. 그러니까 과거를 되돌아보다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미친 듯이 문장이 써져요.


좋은 문장을 쓰기란 쉽지 않으며, 나는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다. 또, 그때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렇게 좋지 않은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무심코 썼던 문장이 지금와서는 좋게 보일 수가 있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작가님의 말씀처럼 '때', 모먼트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취재를 하면서도 영감이 떠오르면 쓰고, 취재가 끝난 후에의 그 생각도 쓰고, 타인의 생각과 만나거나 시간이 지나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을 때 쓰고.


저 순간들을 놓치지 말되, 좋은 문장을 쓰려면 꾸준히 기록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두려움에 맞서서

고통을 무릅쓰고

사랑하기 위한

용기를 내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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