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은 끝까지 해내지 않았거나 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이다.
마치 길을 지나다 소중한 무언가를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도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러 떨어뜨리지 않는다. 소중한 것 외에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많아서, 내가 잡을 힘이 없어서, 누군가가 강제로 떨어뜨리게 해서 어쩔 수 없이 떨어뜨리고 만다.
미련과 후회는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선후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미련이 남아서 후회가 생긴다거나 후회해서 미련이 남는다라고 말한다. 나는 둘의 차이가 내가 알고 그랬던 것이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한 채로 어떤 선택을 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다면 그건 후회다. 그래서 '아, 전에 이런 선택을 하지 말 걸'이라고 후회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아는 상태에서 선택을 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면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게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놓아버린 것이기 때문에 미련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후회는 자책감이 드는 것 같지만, 미련에는 자책감보다는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그러나 미련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다는 건, 내 마음이 좋지 않다는 말이지 상황적으로는 좋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집안 형편 때문에 미술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야했는데 그 일이 대박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미술을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과거가 있어서 미술에 미련이 생길 수가 있다.
미련이라는 건, 해보다가 중간에 포기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라서 아예 하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을 감정이다. 하지 않은 걸 하고 싶은 건 도전이나 시도라고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미련이 남았다는 건 내가 그 일을 했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열심히. 때문에 미련을 그리움과 착각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임했던 그 때의 내 자신이 그리운 것을, 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련의 감정이 마냥 나쁘고 슬픈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련이 있단 건 내가 그 일에 얼마나 열정이 있었고, 그 일을 좋아하는지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미련으로만 남기기도 한다. 내가 떨어뜨린 소중한 게, 지나온 길에 있었는데 왜 찾으러 가지 않을까?
되돌아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서,
찾았을 때의 감정이 생각보다 좋지 않을까봐,
혹시나 내가 소중한 걸 망쳐버릴까봐,
아직도 짊어져야 할 짐이 많아서,
되돌아 갈 수가 없어서,
찾아도 내가 소중한 걸 가질 수 있는 힘이 없을까봐,
거기에 있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아서,
찾았지만 생각보다 소중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미련을 남기지 않는게 가장 좋지만, 오히려 미련을 미련으로만 두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큰 미술작품을 함부로 만지게 하지도, 만지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 소중하니까 그저 거기서 빛나게 두는 것이다. 설령 그게 정말 소중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저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소중한 것을 가장 아름답게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이 미련을 남기는 것 같기도 하다. 만지지도 가까이 가지도 못해 슬플지라도 언제나 기억에서 아름다운 그 상태로 꺼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