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내 권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절을 잘 못하고, 항상 남 눈치를 봤던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면 항상 '이 사람이 나 때문에 불편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으로 과하게 배려해줬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배려를 해준 걸 아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소한 것도 배려해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데 이제는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과한 친절함은 오히려 상대방이 나를 얕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이 친절함을 넘어서 굽신거릴 수도 있어서 적당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배려심을 알아보고 같이 친절하게 행동할 수 있겠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줄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 친절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처음부터 내가 상대방에게 100의 친절함으로 대했다면, 나는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할 때까지 100의 친절함을 유지해야한다. 내가 얼마나 피곤할까? 사람인지라 감정이 왔다갔다 할 때는 80이나 70의 친절함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다. 그러면 상대는 '이 사람이 몇 번 친해졌더니 성격이 다르네?'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99번 착한 사람이 한번 나쁜 짓을 하면 나쁜 사람으로 오인되기 쉽고, 99번 나쁜 사람이 한번 착한 짓을 하면 의외의 면이 있다며 두둔할 수 있다. 사람의 이미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니까 과한 친절함은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된다. 적당한 친절함을 통해서 나를 지켜야 한다.
너무 친절하다보면 거절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친절함과는 결이 다를 수는 있겠는데 나는 대체로 거절을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상대가 날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건 상대의 마음이다. 나는 거절을 통해 내 권리도 지킬 수 있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상대의 감정일 뿐 나까지 그걸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상대의 마음을 지키려다 내 마음이 다친다.
또, 몇 번의 거절을 해보고 나도 몇 번의 거절도 당해봐야 마음이 단단해진다. 내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혹은 마음이 다치면서까지 상대를 배려해주다보면 나의 배려심이 디폴트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상대는 내가 한 만큼 친절을 베풀지 않음에 실망하기 쉽고, 더 나아가 상대와의 관계에 집착하기 쉽다. "나는 이 만큼 해줬는데, 너는 왜 안 해줘?"라고 생각하며 그 반응을 갈구하려고 할 수도 있다. 배려의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거절로부터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수 있다.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욕 하나,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관계에서 이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선'을 잘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은 무조건 친절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덕적 관념에서의 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무조건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악보다는 올곧게 행동하고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는 것이 선이 이긴다는 것이다.
과도한 친절과 배려는 선이 아니다. 자신만의 옳은 가치관을 세워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선이다. 어떤 가치관이 옳은 것인지는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다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가치관을 세울 때 적어도 자신과 상대가 다치지 않는 방향이어야 한다.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지켜야 한다.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배려를 해서 남는 건, 상대의 과도한 요구 혹은 부담일 것이다. 과한 배려는 오히려 상대의 부담을 낳는다. 나를 온전히 지키면서 선을 베풀 수 있는 가치관을 세우자. 그래야 과거의 나처럼 행동하는 상대를 구제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