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처럼, 성공을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해요. 많은 매체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실패는 해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실패를 경험해보면 그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죠. 실패를 하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일까?’하며 자존감이 끝까지 떨어지게 돼요.
왜 자존감이 추락할까요?
실패함으로써 나의 객관적인 위치를 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고,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거죠.
드넓은 강에서 혼자 수영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볼까요? 혼자서 수영하고 있으니 여유롭게 즐겨도 되고, 빠르게 수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혼자 수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워요. 물에 떠있기도 힘들어 허우적대는 경우라면 내가 못한다고 판단할 수 있죠. 그런 단계를 넘어서서 어느 정도의 실력으로 수영을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잘한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영 대회를 한다면 어떨까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영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하게 돼요. 앞서서 ‘잘한다는 착각’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죠. 나는 잘한다고 생각해서 수상할 거라 생각했는데, 수상에 실패함으로써 내가 부족하다는 걸 대회를 통해서 알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실패가 두려운 이유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내가 부족하다는 걸 강제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확연한 차이가 있죠? 전자의 경우도 마음이 아프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와 동시에 자괴감이나 수치심이 들어요. 만천하에 내 실력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죠.
그래도 두려워 해선 안 돼요. 만약 모두가 자괴감을 얻기만 하고 끝내버렸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발명품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발명가들은 수많은 실패를 분석했기 때문에 성공이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뼈 아프더라도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를 마주해서 분석해야 해요. 실패도 두려운데, 실패를 분석하는 건 얼마나 더 힘들까요? 마치 자신의 단점과 직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죠. 스스로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어요. 반박할 수 없는 자료와 수치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패 분석을 넘어서 재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일을 반 이상 끝냈다는 뜻이에요. 새롭게 도전하는 것보다는 이미 해왔던 것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요. 실패에 아파하기보다는 이전에 했던 것이니까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맞서면 어떤 게 실패의 원인이었는지 갈피가 잡힐 거예요. 실패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예요. 이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