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어항 속의 물고기는 헤엄치는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어항의 끝에 부딪혀서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벽이 있음'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다시 얘기하자면 처음부터 그들은 한계가 없었다. 그러나 억지로 만들어 놓은 한계에 순응해버린 것이다.
우리도 그 물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보이지 않는 벽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그 벽을 내가 만들어냈다면, 내가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어항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하늘 속의 물고기인데, 억지로 벽을 만들어 한계를 뒀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만들었던 벽은 상상의 벽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 낸 것임을 알았다면 지금 당장 부숴버리자.
만약 내가 부술 수 없는 벽이라면, 누군가가 만들어 낸 한계라면 그대로 어항 속에서 유영해야하는 걸까? 그러면 나와 함께 벽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면 된다. 수십,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좁디 좁은 어항에서 헤엄친다면, 누군가가 더 커다란 어항으로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또 수천, 수만 마리의 물고기를 데려오면 그 누군가는 더이상 어항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물고기들을 넓은 하늘로 방생할 것이다.
"난 여기까지인가봐.", "난 거기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어항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나는 자유롭게 넓은 세상을 헤엄칠 수 있는 하늘 속의 물고기 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