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에 글 하나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을 것 같은 시기.
이대로 있자니 상황이 답답하고,
헤쳐나가고자 하니 너무 두렵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알 수 없는 삶.
누구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은 분위기.
차라리 누가 내 손을 끌고, 여기가 맞다고 그 길로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 길이 험난하고 힘들지라도,
그 길이 맞다는 확신만 있다면 견뎌내고 싶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 길이 맞다는 확신을 나 스스로 갖는다면
그 길이 험난하고 힘들지라도 그 길로 가는게 맞을 것이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한 5년여 동안 이뤄온 성과들이 그리 눈이 띄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눈에 띄었더라면, 난 이 길이 맞구나 생각하고 그 길로 갔으면 됐지만
마치 작은 놀이터에서 쭈그려 앉아 땅따먹기를 하듯,
내 삶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만 영역 확장을 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나와 더 넓은 광장, 더 넓은 도시로 나가면 될테지만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어떻게 그 방법을 찾아서 실행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나를 봐줄지 모르겠다.
난 나름 노력한다고 했는데, 내가 한 건 노력이 아닌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한 노력의 결과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는 허탈함도 든다.
그래서인지 어떤 노력을 할 때면, 어차피 잘 되지 않을텐데 이걸 해서 드라마틱하게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 먼저 든다.
생각은 삶을 바꾼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내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 단지 일시적인 성과로만 나왔었기에
지속적인 성과로는 이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자꾸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난 감정이 없는 로봇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로봇은 허탈함이나 허무함이나 좌절감이나 우울함 같은 감정은 느끼지 못할테니까.
실패가 있더라도, 감정이 없기에 다음 할 일을 그대로 해나갈 수 있으니까.
어떤 걸 해야할지, 지금 난 무얼해야할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그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할 수 없다.
이제는 형식적인 조언조차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조언은 내가 찾아보고 싶을 때 찾아보면 되는 거니까.
지난 주말, 해인사에 다녀왔다.
"지바라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현실과 존재의 현상과 원인을 바르게 이해하여, 문제 해결의 대안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지혜를 의미.
가장 눈에 띈 글귀였다. 나에게 이런 지혜를 주었으면 좋겠다.
난 노력을 했지만 남이 보기엔 그 노력이 하찮은 노력이었을 수도 있으니
어떤 것이 문제인지, 어떤 것이 원인인지 해결책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싶다.
지금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보려 한다.
겁이 많이 난다.
혹시나 내가 원하는대로 안 되는 게 아닌지,
이대로 그냥 나이만 먹고 마는 것인지,
너무 걱정되고 불안하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와 맞서야 비로소 없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두려움과 맞서기에 나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다.
그래도 난 해야겠지,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눈앞에 다가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