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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Nov 11. 2020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없었던 이유

알고 보니 좋아했던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라는 말이 종종 있다. 정말 그렇게 해보니 전적으로 공감이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딘가에 영향력을 끼치는 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땐 신문 동아리에 들어가서 교내 신문도 쓰고, 서평도 썼었다. 많은 사람이 봐주지는 않았지만 사서 선생님과 동아리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 포토샵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컴퓨터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래서 대학을 광고, 디자인 쪽으로 진학했다. 내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작은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하지만 실제와 환상은 너무나 달랐다. 나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당연히 디자이너는 고객의 요구대로 하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나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으면 클라이언트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그렇게 경력을 쌓아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현타'가 왔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원하지 않는 디자인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점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디자이너를 그만뒀다.


그때 내 심정


내가 좋아서 그 일을 시작하더라도 분명 그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예상치 못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이 없었던 나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TV에서 방송인이나 일반인이 나와서 '저는 그 일을 죽어도 하겠다고 생각해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엄청 열심히 노력했어요.', '제가 좋아하다 보니까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비슷한 느낌의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열정적일까? 그 열정이 너무 부러웠고, 신기했다. 동시에 '왜 나는 그런 열정이 없었을까? 나만 그런 열정이 없는 걸까?' 하며 나를 비난했다. 저렇게 방송에서 나온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은 진정으로 좋아했던 게 아닌 건가?' 하는 의심이 들고,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열정적이지 못했던 거지?' 하는 자책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마다 열정을 담는 그릇이 다른 것 같다. 내 그릇에도 맞지 않는 열정을 담으면 그릇이 깨지고, 너무 큰 그릇에 열정이 한 꼬집 들어간다면 영영 내 그릇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냐에 따라 그릇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나에게 '디자인'의 그릇은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었나 보다.


열정의 롤모델, 갓윤호 님...

좋아하는 일이면 그 일의 단점까지도 사랑해야 맞는 것 같다. 그 단점까지 다 감수해야 좋아하는 일에 질리지 않는 것 같다. 질린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면 그 일에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디자인 일의 단점까지 사랑할 정도로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부터 그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 때, '이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거구나.', '역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아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고, 막상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았지만 취미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는 '취미는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거지,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그렇게 해서 어중간한 실력이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것만 보고 겪을 수는 없다. 그걸 참아내야 결국엔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난 간사하게도, 싫은 건 회피하고 싶었다. 참 어리석었다.


좋아하는 일을 이런저런 핑계로 포기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걸 하다 보니 의욕도 생기지 않고, 그러다 보니 실력도 늘지 않고, 내 적성, 흥미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난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찾았다. 언제 또 이 일에 질리고, 힘들어서 지칠지 몰라도 지금은 업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우선 디자인의 그릇보다 큰 것은 알겠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 내 딴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어떻게든 중상위 정도의 실력을 만들고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일을 시작하다가 그 일을 그만둬버리면 다시 좋아하는 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상위의 실력은 아니지만, 디자이너의 기억을 되살려 지금 조금씩 써먹고 있다.


싫어하는 일은 그만두면 정말 거들떠보기도 싫지만 좋아하는 일은 내가 그 일에 애정이 있고, 취미로나마 삼고 싶기 때문에 계속 가슴 한 켠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다. 그게 바로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게 하는 동기부여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 숙제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간직했던 작가라는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지, 취미로 삼을지는 개인의 몫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정말로 일의 단점까지 견딜 자신이 있다면 업으로 삼고, 그렇지 못한다면 취미로 남겨두는 게 나의 생각이다. 취미는 언제든 부담 없이 그만둘 수 있지만, 일은 그렇지 못하니까. 또한 좋아하는 일을 계속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내가 좋아한다.'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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