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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Nov 18. 2020

엄마는 영어 만학도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가르쳐야 할 때

엄마는 만학도다. 딱히 학교나 어떤 기관을 다니시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영어 독학을 하신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간판이나 전단지, 광고 등등 어느 곳에서나 있는 영어. 엄마는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단어장, 회화책으로 공부하셨다. 책을 사기 아깝다는게 이유였다. 그런데 집에 있던 책들은 전부 내가 사놓은 거였기 때문에 초보자가 배우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글씨도 작고, 밑에 한글 발음도 나와있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영어 배우기를 잠시 그만뒀다.


얼마 후, 엄마 휴대폰에 영어 어플을 깔아드렸다. 책을 사자고도 말했지만, “얼마 배우지도 않을 건데 뭐하러.” 라는 말만 돌아왔다. 엄마는 어플로 영어를 열심히 배우셨다. 메모장에 영어를 휘날려가며 쓰셨다. w는 무슨 발음이 나는지, 영어에서 모음은 무엇인지. 어플 덕분에 엄마는 간단한 단어 정도는 직접 발음하게 되었다. 영어 어플로 공부한 지 며칠 정도 지나고 나서 엄마는 어플 사용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예를 들자면, 책갈피 기능이 없어서 한참을 밑으로 내려야 한다든가, 실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은 문구가 그 이유였다.



그래서 엄마의 영어 공부를 위해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갔다.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었지만, 엄마가 직접 보고 글씨의 크기나 내용을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도 꽤 컸고, 밑에 발음도 나와있고, 앞부분에는 문법도 나와있었다. 그렇게 책을 사고, 엄마는 새로운 책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 책엔 오타가 많긴 했지만, 내가 수정할 부분들을 체크해드렸다. 엄마는 한참을 영어 공부에 빠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 책을 2회독하고 계신다. 광고에 순간적으로 단어가 나오면 읽으실 줄 안다. 또, 백화점에서 읽지 못했던 옷가게 이름도 읽게 되셨다. 엄청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난 엄마가 의미 없는 오락 거리가 아닌 무언가에 빠져서 공부를 하신다는 게 딸로서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은 영어뿐만 아니라 휴대폰, 단어 등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식에게 물어보셨다. 어릴 땐 나는 가끔씩 답답해서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너무나도 간단한 건데 부모님이 그걸 모르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어느 날, 난 인터넷의 어떤 글을 보았다.




그 글의 주인공도 부모님이 휴대폰 자판 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나 계속 ‘다음에’라며 뒤로 미뤘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들이 아주 갓난 아이였을 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엄망, 저거눈 모야?”


“저건 자전거야. 따라해 봐. 자.전.거.”


“쟈젼거!”    

 

*


“아빵, 이거눈 어떠케 해?”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나중에 크면 더 잘 하게 돼.”     


실제로 저렇게 말씀하셨던 건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오셨다. 못 알아듣는 우리가 답답하지도 않은지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해주셨다.    

 

그 글을 읽고 난 후, 난 이제부터 부모님이 뭘 가르쳐 달라고 하면 절대 짜증 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짜증을 내지 않으니 엄마와 아빠는 쉽게 나에게 더 물어보셨고, 이해도 더 빠르셨다. 또한 부모님은 나에게 서운함도 느끼지 않으셨고, 나도 불필요한 감정을 배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10에 반 이상을 짜증 냈던 걸 10에 한두 번 정도 짜증 냈던 것 같다.      


난 내가 커가면, 엄마와 아빠는 어려진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다. 그들이 우리에게 하나씩 가르쳐주셨듯이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을 가르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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