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해서 위로한다.

위로의 모순

by 솔립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더 잘 위로해주는 법이다.
남의 아픔에 더 쉽게 공감하기 때문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로 전달하는 것이다.

예전에 유튜브 채널 '딩고'에서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콘텐츠가 있었다. 깜짝 카메라 형식으로, 일반인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난 그중 샤이니 '종현' 님이 나온 영상이 인상 깊었다. 아쉽게도 난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영상을 봤었다.


https://youtu.be/EBYKH9Fe9Ms


그리고 그 영상의 댓글 중에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다.


"너는 누군가를 달래주고 위로해주면서 정작 너를 달래주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나 보다."


그가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지 감히 추측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라고 빌어주는 것밖에 없다.


댓글을 보고 깨달은 건, 누군가가 당신을 위로해줄 때 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이 당신에게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위로를 해준다면, 그 누군가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에 위로의 말을 더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뻔한 위로의 말보다 진정성 있는 그런 위로의 말이다. 내가 힘들지 않으면 가슴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에게 위로를 해준다면 나도 위로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위로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용기를 얻는다.




또, 상처를 받아봐야 상처 입은 사람을 더 잘 이해한다. 그렇기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한다. 그렇게 상처가 연고가 되어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면 새 살이 돋아난다.


상처를 받아보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 입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면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사람이 그들의 마음에 더 깊이 공감한다. 마치 지난날의 자신 같기 때문이다.




위로의 모순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위로를 더 잘하고,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을 더 이해한다. 그러나 그 아이러니함 속에서도 위로의 싹을 틔운다. 그 싹들에게 위로의 물을 주면 아리따운 꽃이 된다. 그런 꽃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희망을 가진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엔 위로의 꽃을 한 아름 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결에 받은 위로를 먹고 자란 꽃봉오리가 아름답게 꽃을 피운 것이다. 내 주변 사람과 자주 위로를 주고받아 우리의 마음이 꽃밭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쁜 벌레가 꽃을 갉아먹을지라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강한 꽃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종현'님을 좋지 않은 의도로 바라본 것이 절대 아닙니다. 혹시 상처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사과하겠습니다.)

(12월 18일은 종현 님의 기일입니다. 그를 추모하고자 용기 내어 글을 올립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