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주의!
작가는 꾸준히 자신이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해 끝없이 심문해야 한다고 한다.
정식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건 아니지만, 작가가 꿈인 나에게도 그런 심문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글을 왜 쓸까?
어릴 때부터 난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4학년 쯤부터 <어린왕자>로 시작해서 책을 몇 권 씩 읽다가 초등학교 5학년엔 인터넷 소설에 빠져 인소를 몇 편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카페를 만들어 인터넷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후 6학년엔 선생님께서 교실 도서관을 만들어주셔서 친구들이 가져온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놓았던 책을 다시 읽게 해준 책이 또 <어린왕자>였다.
중학생이 되고, 그당시 우리 학교에선 ‘독서노트’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국어 선생님께서 독서노트를 검사하셨다. 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원하는 방식으로 독후감을 작성하는 게 좋았기 때문에 열심히 독서노트를 작성했다. 덕분에 그 선생님으로부터 “넌 커서 작가해도 되겠다.”라는 칭찬을 들었고, 책과 독후감에 관련된 상들도 받았다. 그런 칭찬 덕분에 탄력을 받아 중학교 때 책을 많이 읽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은 시기 였을 것이다.) 작가란 꿈을 처음 갖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점점 현실과 타협하면서 작가의 꿈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교내 신문부에서 신문을 쓰고, 서평단 권유를 받아 서평을 썼다. 여담이지만, 서평을 쓸 때도 <어린왕자>를 읽었다. 총 3번을 읽고, 서평까지 썼지만 <어린왕자> 내용은 이해가 가기 힘들었고, 와닿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글 쓰는 것과 책 읽는 것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다독왕도 수상했고, 지역 신문사가 주최한 신문 쓰기 대회에서 큰 상도 받았었다.
위의 얘기도 자랑에 가까운 얘기이지만.... 지금 돌이켜봤을 때,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글 쓰기가 나름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걸 진작에 깨닫지 못했던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부터 계속 방황을 했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 지도 잘 몰랐다. 상을 받았던 건, 단지 나 이외의 학생들은 책 보다는 공부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상 줄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잘났다기 보단 어쩔 수 없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난 이제 자부심을 가지려 한다. 왜냐하면 상을 받았든 아니든, 난 오랜 기간 동안 휴식은 있었어도 꾸준히 책도 읽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난 글을 쓸 때마다 ‘사람들도 내 생각에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고 생각했다.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디자인 관련 진로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형태만 다를 뿐, 디자인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디자인을 해야한다는 걸 간과했다. 그렇지만 디자인 관련 일을 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 어쨌든 기술을 하나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기술을 충분히 써먹고 있다.
방황의 길을 돌고 돌아 방황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창시절에 비해 어깨 위의 짐이 더 무거워졌다.
매체는 더욱 다양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소비자도 늘었다. 영향력을 미칠 곳은 많지만, 다양해지고 많아진 만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길은 좁아졌다.
그러나 난 글을 꾸준히 쓰면서 한 명의 사람이라도 함께 공감하고 싶다. 아직 미완성된 나의 글과 독자들의 생각이 더해져 완성된 글을 짓고 싶다.
이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단순히 글을 쓰고 발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나의 글로 인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피드백으로 다시 나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쌍방향의 관계가 되고 싶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galymz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