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등산
지난 주말에 거의 1~2년만에 아빠와 함께 등산을 했다. 그 기간에 부재가 있었던 이유는 1,2년 사이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잘 얘기하긴 했지만, 나는 날선 말투로 아빠를 대했고, 점점 거리가 생겼다. 아마 1~2년 전에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점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빠만의 외로운 시간이 흐르고, 엄마의 마음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싶었기 때문에 간만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운동 부족이라고 느껴져서 등산을 가겠다고 한 것도 있었다.) 몇 년전까지는 아빠와 등산을 정말 자주했다. 그때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던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가는 산이라 그런지 더욱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했다. 그래서 조금 험한 산을 택했다. 예전에 몇 번 갔던 산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코스로 가봤다. 그 코스는 오르막길에다가 계단으로 되어있어 너무 힘들었다. 사실 나는 산을 꽤 잘 타는 편이라 등산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가도 숨이 차니 '나도 이제 나이가 먹었구나. 간만의 등산이라 몸이 안 풀린건가.' 생각하면서도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또한 '이래서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구나.'라며 예전엔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상에 올라서 잠시 쉬다가 다시 하산을 했다. 올라온 곳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는데, 산 자체가 돌산이어서 바위가 굉장히 많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중심을 잡고 내려갔지만, 이 길도 굉장한 내리막길이라 몇 번씩 넘어질 뻔했다. 등산화를 신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혹시 바위에 미끄러져서 다칠까봐 흙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미끄러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흙 바닥으로 내려가다가 결국 내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흙이 미끄러워서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난 무의식적으로 발목과 손목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발목과 손목을 발과 손으로 땅을 짚지 않고, 엉덩이로 멈추려고 했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고, 낙엽에 쓸려 계속 미끄러졌고, 아빠는 급하게 뒤에서 내 옷을 잡아서 나를 멈췄다. 손목은 살짝 삐끗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아빠는 내 손목을 주물러 주시면서 괜찮냐고 하셨다. 나는 괜히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에 아프다고 말했다. 그리곤 등산화를 꼭 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차피 산도 별로 안 탈 건데 왜 사느냐고, 돈이 아깝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산을 다시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아빠는 내 손을 계속 잡아주셨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곳이 종종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마치 내가 5살인 것처럼 끝까지 손을 잡아주셨다.
아빠의 손은 내가 5살이었을 때도, 10살이었을 때도, 15살이었을 때도 두툼하고 핏줄이 두드러진 손이었다. 부드럽지 않아서 막 잡고 싶은 손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손이기에 어릴 때도 아빠의 손을 계속 잡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손보다는 팔짱을 끼는 걸로 바뀌긴 했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손을 잡는다거나 팔짱끼면 손을 은근슬쩍 빼셨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 잡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내가 넘어지지 않았으면 아빠는 내 손을 꼭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난 넘어져도 좋았다. 아빠와 함께 손 잡을 수 있어서 말이다.
이 손에는 나를 지켜주겠다는 아빠의 약속과 꼭 잡은 두 손처럼 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아빠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번 등산으로 아빠와 좀 더 예전처럼 가까워진 것 같아서 나는 넘어져도 행복하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meiying-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