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을 믿으시나요?

미신을 믿는 이유

by 솔립

세상에는 참 다양한 미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미신이 참 많죠.


시험날에 미역국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
빨간 글씨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된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려야 한다.


지금도 지키는 사람도 많고, 다 믿을 것은 못 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찝찝한 마음에 미신을 지키게 됩니다.


예전에 비해서 미신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과학적인 진보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냐면서 미신은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미신은 전혀 과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 1000년 전, 100년 전의 조상들로부터 거슬러 내려온 것들이 의미가 바뀌면서 미신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왜 미신을 믿었을까요?





첫째, 미래에 대한 불안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보다 더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날씨를 예시로 들어볼까요?

지금은 기상청이 있어 다음 날이나 일주일 후의 날씨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농경사회 위주였기 때문에 날씨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날씨를 위해서 조상들은 기우제를 지내거나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다음날 정말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왜 그런걸까요?


비과학적인 맹신도 있지만, '하늘의 신'이 있다고 믿으며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지금 심적으로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지금의 종교처럼 가상의 날씨 신을 만들어서 의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종교의 신이 가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잘 할 수 있다는 기대감


징크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신과 비슷하죠. 이 징크스를 지키면 '게임에서 이긴다든가 시험을 잘 본다든가' 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죠.


예를 들어, 나는 특정 손목시계를 차면 시험을 잘 본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칩시다.

그럴 때 손목시계가 갑자기 고장 나 수리를 맡긴다면 손목시계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 하며 '내가 이것 때문에 시험 못 보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손목시계를 잘 차고 시험을 본다면 '이 손목시계를 찼을 때는 항상 시험을 잘 봤어! 이번에도 잘 볼 수 있겠지?'하며 자신감이 생겨 시험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즉, 미신을 믿음으로써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또한,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징크스를 믿으며 나의 불안함을 징크스에게 기대는 것입니다.




셋째, 핑계를 대기 위함


현재에 비해 과거에 미신을 더 많이 맹신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얘기만 들어도 아는 사실입니다.


196,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이토록 잘 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빈부격차가 크지만, 옛날에는 모두 다 못 살았기 때문에 이런 미신을 더욱 더 맹신했습니다.


왜 맹신했을까요?


내가 돈 벌 능력이 없거나, 내가 배움이 짧아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어떤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인데 미신을 믿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합리화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사를 할 때, 북쪽 방향엔 장군이 지키고 있어서 그쪽으로 이사를 가면 안 되는데 여의치 않아 북쪽으로 이사를 갔다고 가정합시다.

그 이후 이사 전이나 이사 후나 생활이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불행한 일이 터지면 "우리가 북쪽으로 이사와서 장군님이 화가 나서 그래."라며 불행한 일의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는 애꿎은 장군을 탓합니다.


무엇을 해도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미신이라는 핑계를 대며 '내 탓이 아니오.'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출처 Unsplash @katrina-wright



미신이 마냥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평안할 수 있다면 미신을 믿는 것도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미신만 믿게 되면 주가 되는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신보다는 실제 원인에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험을 못 본 것이 아침에 미역국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시험 공부를 안 한 것인데, 미신 핑계를 대면서 미역국을 끓인 엄마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서 다음 시험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라고 마음 먹어야 합니다.


아, 미역국하니 갑자기 이 얘기가 생각나네요.

어떤 학생이 수능날 아침 밥상에 미역국이 올라와서 엄마에게 화가 났다고 합니다.

"엄마, 나 오늘 수능인데 왜 미역국을 끓였어? 오늘 시험인거 몰라?"

"만약에 오늘 수능 시험을 못 치더라도 네가 못해서 시험을 망친 게 아니라 엄마가 미역국 끓여서 망친 거라고 생각해."

해피엔딩으로 학생은 다행히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입니다. 미신을 이럴 때 써야 하나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미신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미신을 맹신하는 것 자체가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핑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말하는 저 자신도 가끔은 미신을 핑계로 대기도 합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혹시 제사 지내는 분들이 계신다면 죄송하지만, 제사도 어찌보면 미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진짜 잘 사는 사람들은 조상덕을 진작에 받아서 명절에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다니고, 못 사는 사람들이 조상덕 운운하면서 명절에 집안 싸움하면서 제사지낸다고요.


그래서 저는 미신을 맹신하는 것이 가난함의 수많은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문제의 원인을 풀 생각은 안 하고 미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과를 돌리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로 저는 가족들이 미신 얘기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엄마는 얘기합니다. "미신도 다 믿을 것 안 되지만 조상들의 말은 다 틀린 것이 없다." 라고요.


조상들의 말이 진작에 맞았더라면
이 세상에 못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상들은 지금보다 더 미신을 맹신하며 지켰을 겁니다. 미신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잘 살지 못해서 가난함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미신 때문에 못 살았던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때문에 못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억지로 다른 새로운 미신을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자꾸 가난한 것과 미신을 연관짓는데요. 가난함과 미신의 연관성, 잘 모르시겠나요?


간단히 동네의 골목길을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잘 사는 동네일 수록 'ㅇㅇ당' 같이 점을 보는 곳이 적고, 못 사는 동네일 수록 'ㅇㅇ당'이 많습니다. 지금 현재 상태로는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으니, 무속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이름 모를 신이라도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그런 미신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미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josh-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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