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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날 수밖에

당신의 부모님을 만나 뵙고 집에 돌아와 쓰는 일기

by sol

오늘은,

당신의 집으로 초대되어 당신의 부모님과 마주 보며 저녁을 나눈 날이에요.


이전 첫 만남은 아무래도 좋은 인상을 남한다는 의무감에 어떤 질문과 대답들을 했는지 기억 안 날 정도로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이번 두 번째 만남은 '집'이라는 편안함 주는 공간에서, 그리고 '두 번째'라는 어느 정도 익숙함을 지닌 상태라 그런지 긴장보단 설레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보단 두 분의 얘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줄곧 따뜻한 말씀과 응원을 전해주시는 아버님, 그리고 아침부터 장 보시고 음식 준비하랴 피곤하실 텐데도 나의 편안함을 계속 살펴주신 어머님.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이 어떤 부모님의 품에서 어떤 모습을 배우고 라왔기에

지금의 당신이 내게 그러한 생각과 가치관을 전해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똑같은 말도 따뜻하게 전달할 줄 아는,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생활력과 독립심을 가진 당신이

꾸밈없는 당신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죠.

나 또한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왔음에 감사하고 있지만, 당신이 당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그 또한 좋아 보였습니다.


저녁 시간 내내 아버지는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관과 학창 시절에 꽃 피우지 못한 배움에 대한 아쉬움으로 당신을 출산 한 이후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못해 가정에 소홀했던 과거사를 들려주셨습니다.

맞은편에서 진중하게 얘기를 듣는 당신이 보였습니다.


당신의 옆모습에서

무뚝뚝한 아들의 모습이,

애처로운 소년의 모습이,

사랑을 독차지한 자식의 모습이 보이며

내 안엔 사랑스러움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설렘이 싹틔웠습니다.

어쩌면 당신에겐 본인의 어린 시절을 부모님의 시선으로 내게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이해받고 싶은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나는 지금껏 당신과 나 그리고 인간의 순수한 사랑의 형태를 끊임없이 묻고 의심했는데, 이번 당신의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내 안의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의심과 불안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빗대어 느낄 수 있는 부분은, 타고난 예민함으로 점철된 불안을 숨기며 잘해보려 애쓰며 살아온 내가, 당신 옆에 있으면 더없이 자유롭고 애쓰지 않는 평안한 나를 발견할 때입니다.


애쓰지 않는 마음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애를 쓰는' 마음은 좋은 말로는 '노력'이며, 부정적인 말로는 나를 '고갈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줬을 때 흥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견디지 못합니다. 어릴 적부터 나의 어두움을 감추고 애를 쓰고 편안함을 양보해야 상대가 더 편안함을 느끼고 나를 좋아하는 관계를 계속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겉으로는 사랑받는 사람들의 특징을 흉내 내고, 속으로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하나만으로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당신과 있을 땐 이렇게 계속 애를 쓰지 않아도 당신이 나를 사랑스럽게 받아줄 것만 같다는 망상이 듭니다. 지금 또한 영속될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을 두려워하며 미래를 향한 약속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나도 모르게 미루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저도 당신이 보여준 사랑과 확신에 기대어 한 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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