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피는 맛이 없어. 바꿔주면 좋겠어.

외국인 손님 찰리

by 카페일기

9월 29일

매번 가게에 올 때마다 따뜻한 라떼를 마시는 찰리(영국인/가명)는 무례하다.

찰리를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찰리는 단 한 번도 한국어로 음료를 주문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한국어를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전혀 아니었다.

찰스는 무려 4년 넘게 한국에서 거주 중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찰리는 아직도 포스터에 붙어있는 한국어 안내 문구 한 줄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

한국어는 배워도 배워도 너무 어렵다나. 너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내가 '그러려니, ' 하고 찰리가 오면 자동으로 영어 응대를 할 때도 루하(전 직원)는 단 한 번도 찰리에게 영어로 응대하지 않았다.

무조건 한국어.

'무조건 안녕하세요, 라떼 맞으세요? 안녕히 가세요.'

솔직히 속으로 통쾌했다.

그래서 일부러 찰스가 걸어오는 게 보이면 루하가 응대하도록 급하게 설거지통 쪽으로 가고는 했다.

(심지어 한번 대화하기 시작하면 기본 10분씩 잡아먹는다)


찰리는 영국에 살 때부터 셰프로 일했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도 거의 2년 동안은 브런치 가게에서 빵도 만들며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또 나의 사업 운영 계획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

영업시간부터 영업 방식, 메뉴, 이것저것 훈수를 두고는 하는데 은근 그런 손님들은 많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작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가게 일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그라인더를 들여놓으면서, 기존 원두와 에티오피아 싱글 원두를 같은 가격으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인데, 나의 권유로 찰리가 에티오피아 원두로 라떼를 주문한 것이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워낙 산미가 좋고 플로럴 한 느낌이 특징이라서 묵직하고 고소한 라떼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찰리는 나름 오래된 단골손님이기도 했고, 큰맘 먹고 엄청 값진 생두를 구매해서 이윤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제공해드리는 이벤트라 찰리가 도전해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커피는.. 찰리의 입맛에 영 아니었나 보다.


"나, 커피 다른 걸로 바꿔줘."

찰리가 요구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고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이것은 금액을 받지 않고 새로 만들어주고 싶어."


라떼를 만드는 내내 찰리는 또 내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 커피는 커피 같지가 않아. 라떼는 원래 강한 배전도의 커피랑 만나야 잘 어울리는데 이것 너무 우유맛만 많이 나잖아. 너 이것을 먹어보기는 한 거야? 실제로 테스팅했는데 마음에 들었어? 진심이야?"

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우유 브랜드를 바꿔보는 것은 어때? 지방이 좀 더 적은 것으로 말이야. 그러면 스팀 폼을 만들기가 너에게 어려울까?"

끝도 없는 찰리의 조언.


"찰리. 나는 너의 취향을 충분히 이해해. 그리고 사실은 처음에 너에게 이 커피를 권할 때도 알고 있긴 했었어. 너가 이 커피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야. 사람은 누구나 취향이 다 다르잖아, 커피는 기호식품이고. 나는 네가 배전도가 높은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럼에도 너가 한번 경험해보기를 원했던 거야. 이런 느낌이 나는 라떼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커피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잖아."

"누구를 위한 좋은 경험인데? 나를 위해서?"

"응, 우리 모두를 위해서기도 하지."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아니야."

"그랬구나. 그랬더라도 충분히 이해해."

"나는 새로운 커피값을 지불하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할 거야."

"아니야 찰리. 나도 이 커피값을 너에게 받는다면 굉장히 마음이 불편할 거야. 내가 권유했고, 그렇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이것은 내가 너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부탁할게. 불편해하지 말아주면 좋겠어."

한참을 커피값을 두고 실랑이를 하다가 찰리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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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뒤, 에티오피아 원두로 라떼를 만들어서 마셔봤다.

내가 아는 그 '에티오피아 라떼 맛'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찰리를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찰리가 평소에 무례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추구하는 것을 타인에게 PR 하고 구매하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는 충분히 낯설어할 수도 있고, 심하게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판매 권유를 할 때 선을 잘 지켜가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도 또 한 가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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