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의 목적

눈물을 삼키러 오는 손님

by 카페일기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커피숍에 향한다.

공부를 위해서, 독서를 위해서, 대화를 위해서, 커피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

다양한 목적이 모이는 곳에 주인장으로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이번 손님은 어떤 이유로 오셨구나, 가 보일 때가 있다.


10월 7일

여성 손님 한분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왔다.

"따뜻한 라떼에 시나몬 가루 뿌려서 주세요."

손님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오늘 들리는 손님의 목소리에는 울음 비슷한 것이 담겨있었다.

슬쩍 얼굴을 살피니, 눈이 빨갰다.

별 말하지 않고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았다. 그저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앉아계시면 준비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혼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 가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 종류를 꺼냈다.

아끼는 찻잔을 꺼냈다.

다른 손님들 것까지 두어 잔 더 꺼냈다.


'그냥,, 그냥 쓱 드리는 거야. 좋은 차가 있는데 시음의 시간에 마침 딱 오셔서 내어드리는 느낌.

그 느낌으로 드리는 거야.'

준비해서 조심조심 다가갔다.


"손님, 이건 저희 화이트 템플이라는 찬데요, 과일 향미가 좋은 차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

뭐지, 나 왜 이렇게 뻘쭘하지.

괜히 머쓱해서 바로 돌아갔다. 혹시나 오버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데 손님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이 차 말이에요."

"네??"

"말씀하신 대로 향이 정말 좋네요. 감사히 잘 마셨습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꾸벅 인사해주시던 손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되고 궁금했지만 끝내 여쭙지 못했다.

(사실 아무리 내적 친밀감이 있어도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는 게 사장과 손님의 거리기도 하다)


그저 오늘 내 커피가, 이 공간이 손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어떤 공간은 손님에게 기억에 오래 남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손님은 기억에 오래 남는 손님이기도 하다.

남은 하루만큼은 행복만 했으면 좋겠던 손님.

괜히 싱숭해진 마음으로 마감을 시작했다.


22년 10월 14일

일주일 만에 손님이 재방문을 하셨다.

지난번 시음했던 차를 두 잔 달라고 주문하셨다.

기쁜 마음으로 차를 준비해 내어 드렸다.


옛날에. 참 내가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다.

여전히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힘이 되어준다느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준다느니, 누군가를 바꿔본다느니 하는 생각은 큰 착각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달까?


그런데 오늘 '딱 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차 한 잔 내어드리고, 상대가 맛있게 마셨고, 그 기억으로 또 다시 맛있게 차를 마시러 오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카페는 잘 돼? 손익분기점은 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