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봉투 사건의 전말
21년 9월 20일
커피숍 오픈 일주일 전,
긴장되면서 설레는 날들의 연속이다.
오늘은 가게에 들러 몇 가지 기기들을 작동시켜보고 빠진 게 없는지 확인을 할 계획이었다.
인터넷 연결 끝냈고, 스피커 블루투스 연결했고, 또 뭐가 있더라.
쭉 매장을 둘러봤다. 나의 공간에서는 아직 새것의 냄새가 난다.
이 냄새가 나쁘지만은 않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포스기에 시선이 멈췄다.
맞다. 분명 카드 결제 말고 현금 결제하는 손님들도 계실 테니 돈을 거슬러드릴 잔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당장 수중에는 만 원짜리 밖에 없었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근처 사장님께 인사도 드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저기 옆 옆에 새로 리모델링한 건물이요. 거기 반지하에서 카페 해요. 잘 부탁드려요."
편의점 사장님은 50대 즈음으로 보였고, 인상이 좋으셨다.
"아, 동전이 필요해요? 다음에도 또 필요하면 언제든 와요. 바꿔줄게."
(이후 두 번째로 거스름돈을 바꾸러 방문했을 때는 아내 분이 계셨고 돈은 은행에 가서 바꾸라고 일러주셨다.)
사장님과 짧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매장에서 쓸 종량제 봉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사장님 저 종량제 봉투 좀 사갈게요."
내 말을 들은 편의점 사장님의 표정이 조금 묘했다.
"아... 종량제 봉투? 우리 편의점에는 안 파는데? 여기 근처 편의점에서는 다 종량제 봉투 안 팔아요. 혹시 통장님께 인사드렸어요?"
뭐지. 종량제 봉투와 통장님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게다가 '통장님'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아니요, 인사 못 드렸어요."
"여기는 지역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요. 우리 종종 모여서 수로를 개선한다던지 하는 회의도 하고 그래. 저기 길 건너편에 방앗간 집 보이지? 거기가 통장님네니까 종종 가서 인사드려요."
"네."
꾸벅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오는 길, 건너편 통장님네 방앗간 집을 봤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지금 인사드리러 갈까...? 하다가 에이, 할 것도 많은데 다음에 가지 뭐.
돌아섰다.
21년 9월 23일
편의점을 두 군데나 들렀지만 아직도 종량제 봉투를 사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 근처에 있는 세 번째 편의점에서 다행히 종량제 봉투를 살 수 있었다.
50리터 큰 것과 20리터 두 묶음을 구매했다.
21년 9월 30일
충격적 동네 소식을 하나 입수했다.
우리 가게 근처 편의점 사장님들이 종량제 봉투를 팔지 않는 이유.
오늘 오후에는 건물주가 들러서 이 근처 장사하는 사람들은 종량제 봉투가 필요하면 방앗간 집을 운영하는 통장님네에서 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요..?"
"통장님 성격이 조금 그런가 봐. 예전에도 내가 여기 건물 리모델링할 때, 공사 소음 때문에 죄송하게 됐다고 이 건물 양 옆집이랑 뒷집에 카스텔라를 하나씩 돌렸었거든요? 그랬는데 알고 보니 통장님 사는 집이 우리 건물 옆 옆집인가 봐. 옆 옆집에는 소음 안 나냐며 카스텔라 안 줬다고 한 소리 하셨다네?
사장님도 괜히 꼬투리 잡히지 말고 가서 인사도 좀 하고, 응? 통장님이 여기 꽉 잡고 있어서 주변 편의점들도 다 종량제는 안 들여놓는다잖아. 종량제 봉투는 꼭 통장님네 가서 사세요?"
건물주가 특유의 부산스러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 종량제 봉투는
계속해서 역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사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