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23

by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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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우리는 롯데월드에 갔다.


그는 롯데월드에 처음 가는 나를 위해 엄청나게 신경을 써주었다.

거의 개장과 동시에 입장해서는(덕분에 난 새벽 5시쯤 일어나야 했지만) 야외에 있는 모든 어트랙션들을 태우고, 그것도 모자라 자이로스윙(이건 진짜 무섭다)이랑 자이로드롭을 두 번씩이나 탔다.

나도 놀이기구 좀 탄다는 사람이지만, 진짜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그래놓고는, 자기가 거의 떠밀다시피 두 번째로 자이로드롭으르 태워놓고는, 위에서 안전레버가 내려오는 동시에 방방거리며, 무섭다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이, 마치 아이가 애교 부리는 것 마냥 귀여워서, 나는 정말 그 순간 자이로드롭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는 듯 시간을 멈추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이로드롭을 좀 더 많이 탈걸 그랬다.



그는 이날 작년 록페스티벌 때 첫날 입었던 짙은 파란색 카라티를 입고, 뉴발란스 모자를 쓰고, 이번에 본인이 골라서 샀다는-웬일로 본인의 핏에 잘 맞는-회색 체크무늬 바지를 입었다.

그에게서는 8월의 더위에 흠뻑 젖어서 빨래 덜 마른 냄새가 희미하게 났는데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좋았다.


그는 캐주얼한 백팩이 없는 나를 위해 누군가에게서 가방을 빌려왔다.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정말로 남자 고등학생이 사용할 법한 검정색 백팩이었다.

화장실에 갔을 때 그 안에 뭔가 있을까 해서 열어보았는데, 처음 보는 빵과 작은 카드가 들어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아니 사실 연분홍의 신용카드만 한 그 카드봉투를 보는 순간 어느 정도 슬픈 예감을 했지만-내용을 보았고,

내 머리는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을 보호하고자 아주 빠른 속도로 대충 훑고 내려가버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미 그 카드를 쓴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과, 당신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과, 그 치가 이제 곧 휴가를 가는 창원-서울사람이란 사실을 깊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바보 같게도, 아니 자기 방어적으로, 받는 사람 이름이 없으니 혹시 이건 이 가방의 주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필사적인 기도도 해보았다.

스스로의 필사적인 방어에 나조차 놀랐다.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방에서 빵을 발견한 척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잽싸게 카드를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순간, 역시 슬픈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는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 있으면서 그와 얘기를 하는 동완 나는 또다시 내 예상이 맞았음을, 1분마다 그에게 오는 카톡 또한 그 치임을 알았다.


나와 함께 있지만 내 것이 아닌 사람. 그 순간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슬픔에 그 시간이 지옥 같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는데, 막상 이렇게 마음이 다른 곳으로 부유하는 그를 보니 아, 이제 정말 끝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만 것이다.


그의 복잡한 연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냉정한 나의 평가에 차라리 저주를 하라느니, 이 오빠가 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이혼을 해야 속이 시원하냐느니, 징징대는 당신. 그 앞에서 지치지도 않고 열변을 토하던 나.

사실은 이제, 내가 바라는 그의 미래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어떤 형태의 바람 속에서도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거. 있을 수 없다는 거.


자주 울진 않지만 매일매일을 울게 된다. 이다지도 눈물은 쓸모없는데.

스스로도 상태가 걱정될 만치 울고만 있어서,

차라리 그냥 이 슬픈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다.


그러면 당신은 잠시 슬프겠지만, 이내 잊고 쭉 행복하게 살아가겠지.

그리고 나는, 그 순간부터 생명을 잃고 죽은 채로 살아가겠지.


어떠한 독이나 상해나 충격 없이 간단히 죽을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실행이 안 되는 걸까.


어떡해야 해?

오빠.

내가 어떡해야 해?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할 거고, 사랑해야만 하는 게 내 생명의 이유야.

그래서 영원히 고통스러울 거야. 고통스러워.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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