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26

다섯 번째 밤

by 에스

26



8월


다섯 번째 밤



==========대전에서


방학 동안 듣던 연수가 끝나고 드디어 수료식 날이었다. 우리는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전에 도착하니 거의 1시. 염색이 거의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꽤 길어서 뒷머리를 좀 짧게 쳐주고 싶었다. 흰색에 잔잔한 검은 무늬가 있는 셔츠에 진한 바다색 도트반바지까지, 어쩐지 점점 스타일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이 없어서, 우리는 터미널 근처의 일식집에서 돈가스와 우동을 먹었다.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내가 들은 지루한 연수와 시험, 쓸모없는 분임토론 등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그가 주말에는 아주 오랜만에 남자 동기들과 1박 2일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내심 걱정됐건 건, 행여나 말하는 중에 나와의 얘기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오진 않을까. 그건 아마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그는 내 캐리어를 끌고, 그다지 덥진 않았지만 우리는 설빙에 가서 빙수를 먹었다.

망고빙수가 있길래 우리는 록페스티벌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망고빙수가 맛있었다고 했다.

치즈빙수를 먹으며 나는 늘 그랬듯이 사진을 피하는 그를 잡고 어떻게 해서든 찍으려고 전쟁을 벌였다. 그래도 엄청나게 유해져서 이번에는 손으로 가리지 않은 투샷도 찍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투닥거리면서 잡는 손목이며, 툭툭 치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 만사태평한 사람-.


는 드디어 오송으로 9월 발령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원래 오늘 학교 발표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교육청은 점심이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는 중간중간 마음이 붕 떠 초조해 보였고 연실 카톡을 했다.

아는 학교 교감선생님께 원하는 학교를 얘기해 놨으니 당연히 될 거라고 스스로 안심시키면서.


나는 과~연 원하는 대로 될 것인가?! 라며 연실 놀려댔다. 그는 이미 어제 (아마도 발령이 날)학교 근처에다 전세 원룸도 구해놨다고 하면서, 두 명의 지인에게서 침대와 냉장고, 책상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내일 이사를 하는 거라서 자신도 내일 용달을 불러 그것들을 받아 새 집에 놔둬야 한다고 했다.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기간제로 근무했던 학교의 관사에 있는 짐도 오늘 가서 적당히 싸야지..라고 나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나도 같이 가서 짐정리를 하겠다며 아주 그냥 생떼를 썼다. 그는 내가 힘들 거라며 완곡히 거절해 보였지만, 나는 정말 내가 보기에도 끈질긴 고무줄처럼 빙수를 먹고 나오면서도 생떼를 그치지 않았다.

바로 옆 대전 터미널로 나를 데려다줄 때쯤에는, 나는 전략을 바꿔 '그래. 내가 너무 오빠를 귀찮게 했지...' 등의 체념조로 가기 시작했다(그는 이런 태도에 약하다).

결국에는 표를 끊기 직전에 '그래! 가자, 가!!' 라며 그쪽에서 체념해 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차 케이가 있는 홈플러스 주차장엘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무슨 태풍처럼 몰아쳐대고 있었다.


우리는 대체 왜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지는 생각 못했는지, 그냥 냅다 뛰었다. 가까우니까 금방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홈플러스 정문을 찾아가는 동안, 정말이지 물에 빠졌다 나온 미친 사람들처럼 거지꼴이 되어버렸다.

그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앞서 가며 기가 차서 소리를 지르고,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비 오면 내 생각이 또 나겠네 하면서.


우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홈플러스에 들어와서는 이따 관사에 가서 먹을 저녁거리를 사가기로 했다.

거지꼴로 카트를 끌고 이것저것 주워 담으면서 짐 쌀 때 필요한 상자도 있나 물색했다. 4층 주차장 셀프포장대가 있다 해서 갔더니, 엄청나게 작은 상자만 빼곡히 쌓여있었다. 어쩜 이렇게 미니사이즈만 일부러 모아놨는지. 나는 케이 안에서 이 작은 상자들을 몇 개 정리해 놓고, 그는 1층으로 내려가 책을 묶을 노끈과 큰 상자 두어 개를 구해 왔다.


관사에 가는 동안 우리는 또 서로를 갈구며 놀았다. 그가 말하길, 우리는 아마 전생에 부부 아니면 철천지 원수일 거랜다. 둘 다일 수도 있다며, 우리는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못해봤으니 다음 생에는 부부를 해보자고 말했다. 이런 나의 말에도 그는 그저 웃었다.



==========관사에서


저녁때쯤 관사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그가 오늘까지 해야 할 업무를 깜빡하고 있었다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울상이 됐지만 그것도 잠시, 같은 업무를 하는 후배에게 전화해서는 결국 그 후배가 그의 메일 계좌로 인증서를 받아 일처리를 해주게까지 인맥을 활용했다. 후배는 아마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이 귀찮은 일을 선뜻 자진했을 것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집 꼴을 보면 얼마나 잔소리를 해댈지 안 봐도 뻔하단다. 나는 어질러봤자겠거니, 했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로 폭탄을 맞은 것 같은 몰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도가 든 줄 알았다.


세탁은 해놓고 개지 않은 채 바닥에 널린 옷들과(심지어 방안에 사계절 옷이 모두 끄집어내져 공존하고 있었다),

4분의 1씩 남겨진 채 그나마 뚜껑은 닫힌 채로 바닥에 뒹구는 500미리 콜라팩 몇 개 (도대체 왜 다 마시지 않냐고 물었더니, 내 마지막 자존심이랜다),

절대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은 음식물 포장지들,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는 수많은 동전들(도대체 왜 바닥에 동전들이 쌓여 있는 걸까?), 그리고 양말들(정말 건드리기 싫었지만 바닥에 밟히는 게 너무 많아 결국 한 켤레를 주워 신었다).

열어보고 싶지 않은 냉장고와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침대 위의 이불.

베란다에는 반세기는 묵은 것 같은 김치 락앤락과 빨래뭉텅이, 그리고 천장과 연결된 건조대에는 여남은 빨래와 속옷이 널려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가 단번에 포기하고는 그에게 욕실 청소를 시켰다. 그는 낑낑거리며 열심히 청소를 했다. 나는 그동안 노끈으로 책을 묶다가 너무 힘들어서는 옷 정리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갖다 버리고 싶은 옷들을 왜 꼭꼭 챙기려 하는지! 나는 냉정하게 몇 개를 버리고는 나머지를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정리하던 도중에 그의 군복을 발견하고는 가지겠다고 했다. 그는 그걸 왜 챙기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극구 말리지는 않길래 내 캐리어에 챙겨버렸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 있던 그의 학교 이름표도 내 가방에 넣었다.


방을 어느 정도 치우고 나니 이 열받는 마음을 진정시킬 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맥주를 사 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케이를 타고 근처에 얼마 전에 생긴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 왔다.

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렸다. 그의 핸드폰으로 야구중계를 보며 홈플러스에서 사 왔었던 컵라면, 김밥과 맥주를 먹으니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술을 먹지 않는 그는 내 권유를 거절했지만, 결국 마지못해 내 컵의 맥주를 두 모금 정도 마셨다.


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거의 12시, 1시가 된 것 같았다. 그와 있을 때마다 겪는 시간감각 마비는 여전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는 침대 바로 아래 이불 하나만 바닥에 깐 채 누웠다. 나도 내려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침대 가장자리에 최대한 붙어 옆으로 누웠다.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점차 나이를 먹어가는 사실과, 자신의 죽음이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두렵다고 했다.


나는 첫 번째에는 격하게 공감했지만 두 번째에는 공감하는 척했다. 나에게 나의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는 친근하고 그리운 존재니까. 그런 얘기를 할 때 그는 마치 떨고 있는 작은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손을 내려 그의 감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한없이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꽤 긴 앞머리. 동그란 정수리. 그리고 이런 나를 뿌리치지 않는 당신. 오히려 가만히 내 손길을 놔둔 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당신.


어째서일까. 어째서 나에게 이토록 허용적일까.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걸까. 이런 당신의 태도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지 알까.


꽤 오래 얘기를 하다가 그는 잠들었다. 옆으로 누워서 전처럼 코를 많이 골지는 않는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가 침대 바로 아래에 어찌나 딱 들어붙어서 자는지 도무지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결국 포기해 버렸다. 바닥으로 털썩 떨어져서는 모르는 척 그의 품으로 파고드는 상상을 하면서.


새벽녘부터 닭이 우는 소리에 비몽사몽이었다. 그나마 그와 같이 잔 것 중에는 오래 잔 것 같다. 처음 자던 때에는 아예 밤을 꼴딱 새 버렸었으니 이 정도면 큰 발전이다.

오늘 이사를 해야 해서 엄청 졸리지만 일어나야 했다. 나는 일어나자- 하고는 바닥으로 털썩 떨어져 그의 옆에 붙었다. 그는 곧바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나는 밤새 바닥이 얼마나 차가웠는지를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이불을 깔았는데도 이 정도였다니. 이럴 줄 알았음 올라오라고 떼쓸걸.


비는 아직도 오고 있어서 그는 어찌해야 하나 망설였다. 침대는 그렇다 쳐도, 냉장고가 이동 중에 비를 맞는 건 큰일이다.

그때 청주의 M오빠에게서 전화가 와서 비가 안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우리는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친김에 집 계약까지 하기로 했다.


==========오송에서


우리는 물만 한 모금 먹고는 오송으로 출발했다. 옷이 없어서 그는 내가 잘 때 입었던 드래곤볼 티를 입었다(세상에 사이즈가 90인데).

일단 친구네 집으로 가서 책상을 가져오기로 했다. 우려와는 달리, 용달차는 미리 비에 대비해서 비닐을 잘 덮고 왔다. 우리는 괜한 걱정을 했노라며 안심했다. 가는 길에 잠시 우체국에 들렀다. 나는 차 안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며 그를 기다렸다. 그는 돈을 인출하고 와서는 친구네로 향했다.


기어를 잡은 그의 오른손은 핏줄의 모양이 나와 많이 달랐다. 큰 핏줄 하나가 오른손의 바깥쪽에서 나와 손등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각자 가운데, 약지, 새끼손가락 쪽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검지 쪽 손등에 굵은 핏줄이 또 하나 툭 불거져 나와 있고, 그 옆에는 작은 핏줄 하나가 짧게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나는 그의 왼쪽 손등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는 내내 했다.


책상을 싣고, 옆 동네의 또 다른 친구 집에 가서 침대와 소형 냉장고도 챙겼다. 침대는 무려 200만 원짜리 퀸사이즈였는데, 그래서인지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이 새것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그가 이사할 동네의 집으로 갔다. 원룸이었는데, 구성이 아주 좋았다. 가져온 것들을 배치하고 용달 아저씨를 보내고는 조금 쉬면서 집을 구경했다. 그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 집. 다시 여기 올 기회가 생길까? 기분이 영 이상했다.


우리는 1시쯤에 일을 끝내고 부동산으로 가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이 계약이라는 것이 부동산을 통해 하니까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거였다. 거의 3시가 되도록 부동산에 처박혀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계약을 마쳤고, 부동산 중개 아주머니가 여자친구 오래 기다렸다면서 나에게 말로만 듣던 행운의 2달러를 선물로 주었다. 나는 기쁘게 받았다.


하루 종일 아침 점심도 못 먹은 채 일만 했던 우리에게 아직도 남은 고비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 또 다른 공문이었다. 우리는 근처 pc방으로 가서 각종 보안 프로그램과, 백신과, 업무포털을 깔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한글 프로그램이 없어서 공문이 열리질 않았다.. 우리는 갖은 수를 다 써보다가 결국 교육청에 전화해서 내일 제출한다고 하고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pc방을 나와 버렸다. 업무포털이 이렇게 짜증 나는 건 처음이었다.


드디어 밥을 먹는 시간. 나는 이미 배고픈 한계를 넘어서 있었고,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보는데 그게 정말 귀여웠다.

우리는 새로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런치타임은 고작 한 시간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꼭 가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렀다.


5시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그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느긋이 유자 맛이 나는 음료수를 먹으며 부산으로 가는 차가 6시 30분에 있는 것을 보고 예매했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게 남아, 나는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그의 상의를 하나 사주기 위해 옷가게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10분 안에 골라! 라며 가게를 휘젓고 다니다가 겨우겨우 닥스 셔츠 이쁜 것을 발견하고 사주었다. 흰색에 강아지 무늬가 점점이 찍힌 반팔 셔츠였는데 슬림해서 꼭 맞았다.

셔츠를 사고 나니 6시 15분쯤이었다. 우리는 냅다 뛰어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둘 다에게 멘붕이 왔다.

케이가 있는 곳이 주차장 몇 층이었지? 식당에 올 당시 우리 둘 다 몸과 정신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렇다곤 해도 세상에 자기 차를 못 찾는 상황이라니! 도무지 주차장 어디에 차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하 2층 주차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케이를 찾았다. 설상가상으로 지하 2층 주차장은 구역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2층을 다 뒤져도 없길래 설마 2층이 아니었나? 하고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3층에도 케이는 없었다.


우리는 어제 홈플러스에서 비를 맞던 때보다 10배는 더 패닉인 채로 주차장을 헤맸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지하 1층으로, 거기에도 없길래 다시 처음 생각대로 2층으로 가 다시 한번 뛰어다녔다.


케이는 지하 2층 구석에서 얌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버스 시간은 지난 뒤였다.


방법이 없을까?! 우리는 없던 지식을 총동원해서 부산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대전! 대전 시외버스터미널 사이트를 보니, 다행히도 7시 40분에 차가 있었다. 재빨리 예매하고는 우리는 다시 대전으로 달렸다.

이틀 만에 대전에서 그의 사택으로, 오송으로, 다시 대전으로. 생각만 해도 기가 차고 시트콤 같은 상황에 우리는 낄낄대며 웃었다. 다행히 도로는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대전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잠시 동안 막힌 탓에 남은 시간은 또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래도 마무리는 항상 좋았다며 서로를 안심시켰다.



==========다시 대전에서


대전 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거의 7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차가 워낙 많아서 주차를 할 수 없어서 나는 케이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캐리어를 들고 터미널로 뛰었다.

예매해 둔 표를 뽑고, 3분 만에 화장실에 가야지! 했는데 어느새 그가 와 있었다. 차는 어디에 뒀는지, 어쨌든 나는 무사히 화장실도 다녀와서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탔다.

그는 주차를 제대로 해놓지 않았는지 서둘러 뛰어나갔다. 버스가 출발하고, 그가 케이에 잘 탔다는 통화도 하고 나니 정말이지 기운이 다 빠졌다.


아니 솔직하게는, 허탈했다. 맹세코 나는 부산에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내심 나의 머릿속에는 일이 또 꼬여서 그와 하루 더 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숨어있었던 것이다. 7시 39분에 버스에 탄 나에게는 그 남은 1분이 어느 때보다도 길었던 것이다.


버스에서 한 시간 정도 자고 나니 피로가 풀려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생각이 났다. 아니 아쉬워서 성질이 났다. 그에게는 나와 겪었던 모든 다이내믹했던 엔딩들이 모두 해피엔딩이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엔딩들이 슬펐음을 그는 모르기에.

그는 1분 1초가 촉박한 가운데 나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뿌듯했겠지만, 나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 눈물바다임을 그는 모르기에.


==========부산으로


버스가 울산에 진입했을 즈음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버스 안의 TV에서는 어제 그와 얘기했었던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이었고, 옆에 앉은 여자는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와 헤어지는 매 순간이 이렇게나 괴로운데 왜 자꾸 만나려 할까. 스스로에게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결혼에 가까워지는 그를 보며 놓아줄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절감하는 게 너무나 괴로워서. 이 상황은 아무리 애써도 어찌할 수 없다는 현실이 결국 내 죽음에 대한 절실함으로 돌아오는 것 또한 힘들었다. 그 순간 정말, 내 눈물을 그치게 만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빨리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자.


자주 연락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아빠와 통화를 한다.

올해 초에는, 편지가 왔었다. 아아주 어릴 적에나 사서 쓰던 흰색 기본 편지지에 간간히 틀린 맞춤법으로 쓴 편지에는, 나를 위해 산에 집을 하나 지어줄 거라고 씌어 있었다. 내가 힘들 때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나는 그 집에 마지막으로 가게 될 날을 소망한다.


계기가 무엇이든, 마음을 먹게 되면 나를 위한 그 안식처에서 진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거다.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으면, 하고 늘 소망한다.



버스에서 내려 얼굴을 한번 쓱 닦고는 택시를 잡아 탔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모는 그 택시 안에는 제목도 모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처럼, 사랑이 끝났음을, 떠났음을 담담하게 고하는 노래에 나는 그만 다시 울어버렸다.


아아 울어서 해결될 수만 있다면.



집에 와서는 그가 친구와의 통화에서 내일이 아버지 생신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기프티콘으로 케이크를 보냈다.

한참 뒤 문자가 왔다.


[고마워 맹꽁아!]


맹꽁이라니.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렸다.


다음 날 내가 카톡으로 연락을 했을 때, 그는 병원에 있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계속 편찮으시던 할머니가 결국 새벽 4시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전화를 했더니 걱정보다는 목소리가 괜찮았다. 그래, 어제 그를 보낸 것이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구나.라고 위안을 삼았다.



스물일곱과 서른넷.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려 7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 세월에 비해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은 어쩜 이렇게 턱없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이렇게 같이, 둘이서, 투닥거릴 수 없을 거란 현실이 무섭게 와닿는다.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닿을 수 없었던 몇 번의 밤과
너에게 무심코 던진 듯 위장해서 보낸 수많은 나의 마음들.


다정하지만 결국 속은 비어 있는 너의 무심한 행동들과
그것조차 간절해서 어떻게든 잡아 보려는 나의 필사적인 몸부림.


당신은 알까.
아니 알고 있겠지.


너 역시 이렇게 하는 것만이 영원히 우리를 해피엔딩으로 위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 또한 이번 생에는 거짓 해피엔딩만을 기다리면서 또 하루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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