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
27
9월 3일
꿈을 꿨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만났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밤이었다.
비 오던 날 그와 함께 했던 기억 때문인지,
어쨌든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기억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그와 함께였다는 어떤 포근함이 남아 있다.
같이 뭔가를 먹기도 했다. 마치 연인처럼, 다정해서 새벽에 깼더니 절망스러웠다.
나는 부랴부랴 다시 잠들었다. 비는 계속 그날처럼 내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잠들고 나니 꿈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적은 거의 없는데.
우리는 계속 어딘가를 놀러 다니고, 뭔가를 먹으러 다녔다. 낯선 거리, 낯선 식당에서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그런데 마지막에는
마치 현실처럼 나의 죄책감이 드러나 버렸다.
죄책감은 동생과 엄마의 얼굴로 등장하여 나를 힐책하고 비난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네가 어떻게.
꿈에서 깨니 기억에 남는 건 두 사람이 나를 보던 죄책감뿐.
그럼에도 나는 꿈에서 뭘 했더라, 무슨 말을 했더라, 안간힘을 써서 떠올리려 한다.
너무나 행복한 꿈.
그대로 꿈꾸듯 죽을 수만 있다면.
9월 19일
오송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가는 김에 그와 만나기로 했다. K는 대학동기 언니의 결혼식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때문에 나는 이번 주 내내 몸이 근질거리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연수원에서 4시 반까지 연수를 듣고, 시내버스를 타고 그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고작 20분 남짓 시내버스를 탔을 뿐인데도 멀미가 심각해서 나는 금세 초췌해졌다.
그는 케이를 타고 나를 픽업하러 왔다. 우리는 시내에 가서 놀기로 했다. 쉬는 날이라 임용고시 공부할 때나 보던 트레이닝복을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멀쩡한 모습에 검은 재킷까지 입고 있었다. 출퇴근할 때만 입는다고 하며 그가 웃었다.
지난번 케이를 못 찾아서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그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낄낄대고 웃었다. 이번에는 몇 층 어느 구역인지까지 꼼꼼히 봐두었다.
느긋이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우리는 6층의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화덕피자와 리소토를 시켰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든 간에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편하고 어색함이 없었다.
그 와중에 그는 학교를 옮긴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추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체육 교과의 여자 선생님인데, 자기 자리에 초콜릿이며 견과류며를 산더미같이 주고 간다고 한다. 나는 그러니까 끼 부리지 말라며 잔소리를 한 바가지 늘어놓았고 그는 또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마냥 낑낑대고, 구시렁거렸다.
정말이지 어쩜 이럴까. 본인 말로는 벙어리처럼 하고 쥐 죽은 듯이 찌그러져 살고 있댄다. 근데 구석에 찌그러져있기엔 덩치가 너무 컸나. 귀신같이 몰려드는 여자들은 꼭 있다. 무섭다.
근데 더 기가 막힌 건, 이 눈 높은 덩치만 큰 아저씨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도 안 들어오는 것이다.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고 있다나. 월요일에 했었던 소개팅도 애프터를 거절했다고 했다. 보아하니 아직도 그다지 급하진 않은 모양이다. 나는 정신 못 차린다며 갈궈댔다.
그런 얘기(라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하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꽤 맛있었던 피자와 리소토를 다 먹어치우고, 우리는 옆에 있었던 빙수집에 가서 딸기빙수와 밀크빙수를 먹었다.
시간은 엄청나게 빨리 흘러서, 9시가 가까워질 때쯤 우리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나는 차에 놔두었던 시계를 보여주었다.
텐바이텐, 1300k, 바보사랑 등등을 눈이 빠지게 돌아다니며 고른 영화 슬레이트 모양 벽시계인데 끝내주게 이뻤다. 그도 보더니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좋아했다. 월요일에 집에 가서 설치하고 인증샷을 보내준다고 했다.
저녁이 되어, 늘 그가 가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케이를 대놓고 걸어서 터미널로 향했다. 일교차가 너무 큰 탓에 반팔, 반바지만 입은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재킷을 벗어준다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대신 팔짱을 끼고 걸었다. 따뜻함과 열오름 때문에 추위는 금방 사라졌다.
뭐라 떠들며 높은 벽이 있는 그 길을 걷고 나니 터미널이 나왔다. 9시 차를 끊고 잠깐 기다리다가, 그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떠났다.
돌아오는 버스는 완행이어서, 이곳저곳 계속 서는 바람에 아주 피곤했다. 그래도 이번엔 그다지 돌아오는 길이 슬프지도, 절망스럽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냥 뭔가 마음이 굳은살이 박힌 듯 무뎌진 것 같았다.
빨리 10월이 와서 같이 콘서트를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