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밤
10월 2일
여섯 번째 밤
다음 날이 개천절이라 퇴근을 하고 그를 보러 갔다.
그는 나보다 아주 조금 일찍 도착해서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후드티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길래 웬일이냐고 했더니,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고 했다. 본인은 학생들 중에서도 휠체어를 탄 장애우 학생을 보조하느라 아주 힘들었다고 얘기를 했다.
진작 얘기를 했으면 안 오는 건데..라고 했더니 날 보는 거랑 현장학습은 상관없다며 쿨하게 대답해 왔다.
우리는 그가 학교에서 받아온 김밥을 집에서 먹기로 하고는 중간에 홈플러스에 들러 간식을 좀 더 사기로 했다. (건물 주차장에 케이를 댈 때마다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며 웃었다)
치킨과 그가 좋아하는 코카콜라 제로, 빵을 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맥주 먹을 거지? 라며 물어본다. 본인은 입에도 안 대면서, 남 먹는 건 잘 챙긴다. 우리는 수입 맥주가 4개에 만원이길래 본 적도 없는 맥주 4개를 골라 담았다.
이사한 이후로 처음 오는 원룸은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방 구조도 조금 달라졌고, 가구도 더 들어와 있었다. 책상 위가 엉망진창인 건 여전하다. 흰 벽에는 내가 준 시계가 걸려 있고, 친구에게서 받은 엄청 좋은 침대에는 새로 산 잔잔한 꽃무늬 이불이 구겨져 있었다.
8시에 인천 아시안 게임 북한 대 한국 축구 결승전이 있어서, 우리는 일단 그전까지 김밥만 먹기로 하고는 맥주를 냉동실에 넣었다. 널찍한 침대에 앉아 TV를 트니,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결승전과 프로야구도 하길래 번갈아가며 봤다.
그는 침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함께 웹툰을 보다가 그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덩치 큰 남학생을 계속 업어서 버스에 태우고, 내리고를 반복했으니 힘들만하다. 그는 결국 10분만 자자며 핸드폰 알람을 맞추고는 곧바로 코를 골았다. 나는 옆에 딱 붙어서 같이 조금 졸았다.
일어나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치킨을 데우고 이미 꽁꽁 언 맥주와 콜라를 내놓았다. 나는 계속되는 위장병 때문에 치킨은 거의 먹지 못하고 대신 맥주만 맛있다며 먹었다. 둘 다 배가 별로 안 고파서 얼마 안 먹고 다시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축구를 봤다. 그는 감독이라도 된 마냥 답답하다며 아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바로 옆에 붙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옆모습을 관찰한다.
전반전이 지나고 후반전도 끝나갈 때쯤 그가 또 잠들었다.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인 채, 나는 조심조심 일어나 대충 상을 치우고, 불을 끄고, 양치를 하고,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그는 잠깐 눈을 뜨더니 다시 잠들었다.
누워서 한참을 어둠 속에서 망설이던 나는 열심히 코를 고는 그를 한 팔로 꼭 껴안았다. 그는 잠결에 두 손으로 내 팔을 잡아 몇 번 어루만지더니 다시 코를 곤다. 정말 어쩜 이런 사람이 있나 싶다.
내 얼굴을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아주 가까이서 잠든 얼굴을 관찰했다. 눈이라도 뜨면 어쩌나 불안하면서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단정하게 눈을 감고 입은 반쯤 벌리고 잔다. 자면 안 되는데, 종일 피곤했던 나도 점점 비몽사몽이다. 지칠 줄도 모르고 요란하게 코를 골길래 손으로 얼굴을 이쪽으로 돌려놓자 조용해졌다.
손에 닿은 뺨의 감촉에 깜짝 놀랐다. 차갑고, 매끄럽고, 착 달라붙는 처음 겪는 느낌. 나는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한 팔로 허리를 꽉 끌어안아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의 옆에 꼭 달라붙어도, 10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마주 보며 한쪽 뺨을 손으로 감싸도, 그 어떤 행동도 제지하지 않는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어디까지 허락할까, 수만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섞여 들어간다.
하지만 겁쟁이일 뿐인 나는 결국 그 코앞의 남자에게 입 맞추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밤새 그는 나를 등지고 돌아누웠다가 다시 바로 누웠다가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가 몇 번인가 이불을 덮어주었다를 반복했다.
9시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잠에서 깼다. 망가진 위장으로 먹은 맥주 탓에 밤새 속이 이상했다. 나는 칭얼대며 아예 대놓고 팔베개를 하고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요즘 힘든 수학여행 업무 얘기를 하며 속 쓰림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저 가만히 들어주었다. 우리는 다시 조금 졸았다가 일어났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유일하게 제대로 잠들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초췌한 꼴을 감추려고 부리나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도 일어나 씻고는 속이 쓰린 나를 위해 집 앞 본죽에 가서 전복죽을 사 왔다.
우리는 어제 나온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며 죽과 남은 치킨을 데워먹었다. 밥을 먹고는 여유롭게 다시 침대로 기어올라가 TV로 비정상회담을 보며 웃어댔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그의 배를 베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둘 다 또 잠들었다. (얼굴을 보러 간 건지 자러 간 건지)
1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겨우겨우 나갈 준비를 하고는 근처 저수지에 들러다. 저수지에 뜬 몇 대의 오리배를 보더니 저걸 타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신기해하길래, 아빠랑 동생이 왔을 때 탔었다고 했더니 아주 신기해했다. 나중에 같이 타자고 졸랐더니, 내년에 본인이 있는 곳으로 전근해 오면- 이라며 내가 절대로 여기 오지 않을 거란 확신에 차서 말을 한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아주 잠깐만 산책로를 걸었다. 마주 오는 어떤 할머니에게 무작정 휴대폰을 주고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자 그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께서 찍어준 사진은 딱 한 장 빼고는 건질 게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했다.
10분도 채 걷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케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걸었다. 그는 여기 카페가 괜찮다며, 다음에 오면 가보자고 했다.
다음, 이란 게 있는 거구나. 나는 조금 설레었다.
그리고 터미널 근처 푸르지오에 케이를 대고 전의 그 높은 돌담길을 걸었다. 터미널로 와서는 나를 태워 보내고, 자리에 앉았더니 이미 그는 떠나고 없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잠깐 엄마 얼굴을 보고 자고, 일찍 일어나 사전답사를 하기 위해 경주로 갔다. 사전답사를 다 끝날 때까지도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다가, 내가 카톡을 보내자 그제야 지금 막 연락하려고 하던 참이라며 그가 대답해 왔다.
나는 또 당신 배를 베고 자고 싶다며, 보고 싶어 죽겠다며 이런 말들을 했지만 그는 그저 못 들은 척, 푹 쉬고 주말 잘 보내라며 상투적인 인사를 한다.
본가에서 돌아와서는, 집에 가기가 죽도록 싫었다.
울게 뻔하고, 아플게 뻔한데 어떻게 그 텅 빈 빈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일하기 싫다는 핑계를 대고 부장언니네 집에서 잤다.
이 모든, 나를 둘러싼 상황과 현실이 견디기 힘들다.
그의 마음이, 혹여라도 내가 그때 얼굴을 감싸고 입 맞추었다 하더라도,
그가 그걸 받아주었다 하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다.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제 그만 이런 고통스러운 행복을 끝내버리던지,
모든 걸 체념하고 그의 곁에 믿음직한 동생으로 영원히 남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