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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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오송 전보를 써놓고 나니 슬슬 어디로 집을 구할지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그가 살고 있는 집 전세가 얼마인지 물어보자 거의 곧바로 답장이 왔다. 현재 내 상황으로는 턱없이 비싸다.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한테 500만원 정도 있으니까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금융기관이 아닌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쇼킹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신기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오송에는 눈바람이 장난 아닌 듯, 바깥을 찍은 사진을 보내준다.
부쩍 사진을 많이 보내준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새벽에 내려 운동장을 하얗게 덮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하루 종일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서 하지를 못했다. 우리가 어떤 사이도 아닌데, 용건도 없이 전화하는 게 괜찮은 걸까. 이런 쓸쓸한 고민들.
하지만 결국 퇴근길에 전화를 했고, 그는 받지 않았다가 곧바로 내게 전화를 했다. 감기 걸렸냐고 했더니 약을 샀다고 대답했다. 웬일로 병원에 갔다며 칭찬해 주었다. 오늘은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쉰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좀 더 얘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
얼마 전에는, 1월에 여행 겸 공연을 보러 가는 것에 대해 얘기했더니 단칼에 K와 같이 가자며 대답을 했었다.
화가 치밀어올라 그럼 티켓 취소하고 그냥 안 갈 거라고 했더니 그가 또 쩔쩔매면서 알겠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진심인지. 그렇게 쉽게 알겠다고 할 거면 처음부터 알게 다고 하면 안 되나. 정말 튕기는 거 하나는 우주 최강이다.
아무튼 그 발언 이후에는 그냥 인정한 건지, 간간히 일정을 물어본다. 무슨 공연인지도 모르면서 어쨌든 공연을 본다는 것만 알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오후에 공연을 본다는 걸 알고는 본인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 같았다.
전주에도 가자고 했더니, 광주부터 가자고 했다.
둘 다 가는 거구나! 나는 1월 만을 생각하며 아주 힘든 12월을 버틴다.
12월 18일
송년회 회식을 했다. 부장언니가 자주 가는 갈비탕 집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었는데 문득 그에게서 아무 예고도 없이 전화가 왔다. 식당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더니 정말 추웠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전에 병원에서 검사받은 결과가 오늘 나왔는데, 보호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서울에 계셔서 안되니, 혹시 오송에 올 수 있냐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거의 생각이 정지해 버려서 뭐라고 하는 건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추운 바깥의 날씨까지 더해지자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과 목소리까지 멋대로 덜덜 떨렸다. 내가 다시 물어보려 하자 그는 올 수 있는지 없는지만 대답하라고 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다고 하고는 그 짧은 순간에 지금 오송에 갈 수 있는 백한가지 방법을 쭉 떠올렸다.
그랬더니,
"사실 뻥이야!!"
나는 그 순간 더한 말도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개자식아!!'정도로만 해뒀다. 그는 정말로 미안하다며 말했지만 거의 웃고 있었다. 정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사람도 친구들과 회식 중이었는데, 내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내기에서 이겼겠지만 나는 멋대로 전화를 끊고 자리에 와 앉아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카톡으로 혼나는 강아지처럼 낑낑댔다. 장난이었다며, 그렇게까지 놀랄 줄 몰랐다며 연거푸 사과를 했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도 이랬냐고 물어봤다.
"아니, 아무한테도 안 했어. 네가 처음이야."
"그래서 또 누구한테 이 장난할 건데요?"
"안 할래."
나에게 처음으로 전화한 것에 기쁘면서도 어쨌든 그날 저녁 내내 분통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