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40

사랑해 달라는 몸부림

by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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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그는 왜 계속 나와의 인연을 유지하는 걸까.
내가 나의 지난 어리석은 행동들을 후회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 나와의 인연을 그저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인할 방도도 없이 그저 이토록 슬픈 추측만 가지고, 나는 그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모든 게 두렵고, 두렵다. 그와 한걸음 떨어져서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내일부터 시작인 새 학기를 맞이하는 것도.



3월 2일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약속했던 대로 저녁에 만나 시내로 나가 화덕피자를 먹었다.


늘 그랬듯 오랜만에 보는 어색함은 금방 사라지고, 우리는 롯데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나는 케첩, 검은콩, 맥주와 와인 따위를 사고, 그는 건전지를 둘러보다가 다이소가 더 싸다며 근처로 이동했다. 홈플러스에도 들러서 딸기도 사고, 다음날이 개학일인 것 치고는 여유로웠다.


장을 보고 우리 집으로 갔다. 그는 집들이 선물로 휴지 30 롤을 사서 케이 뒷좌석에 놔두었더랬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너무 긴장되고 두근거려서 만나기가 싫다. 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보기 싫은데 어째서 보고 싶은 걸까.


그는 내가 가르쳤던 자료들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컴퓨터에 있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usb에 담는 동안 침대에 앉아 얘기했다. 그냥 또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달라붙고. 그는 밀어내지 않고. 자꾸만 접하고 싶다고 생각해 버린다. 아는 체도 안 해야지, 라던 다짐 따위는 그래. 그냥 헛소리였다. 이토록 다정한 저 남자는 이미 누군가의 남자일 텐데. 예상을 뛰어넘는 절망스러움에 너무 힘들었다. 나는 아까 사 온 딸기를 절반을 덜어서 꼭지를 따고 씻어 락앤락에 담아 그에게 들려 보냈다.


3월 20일 금요일은 내 생일이다. 아마 그날은 부산으로 돌아갈 테니 목요일에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일일대여는 안되냐고 했더니 난처하게 웃으며 안된다고 난리를 친다. 그래서 나는 더 난리를 쳤다. 그는 끝끝내 안된다며 대신 최대한 오래 있자고 한다.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힐 것처럼 괴로운데 왜 이렇게 조르고 떼쓰는 걸까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된다. 한심하다.


그리고 나니 개학날이 밝았다. 조금의 기대도, 조금의 설렘도 없었던 만큼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5시 반이 넘어서야 퇴근준비를 했다. 오늘도 역시나 계단을 내려가는데 전화가 왔다. 그는 개학날인 오늘 학년회식을 한다더니, 결국은 다들 바빠 수요일로 미뤘다고 한다. 그렇게 눈만 감으면 자는 사람이 개학 전날이라 긴장해서는 새벽 3시에 잠들었다며, 빨리 가서 자야겠다며 투덜댄다.


같이 우리 집에서 저녁 먹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겨우겨우 참아냈다. 잘한 일이다. 아마 지금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것이다.


죽고 싶다. 머릿속에는 온통 한 문장뿐이다.


가 전에 가르치던 학생 중 자살기도를 한 남학생이 있다며 걱정을 했었다. 듣기로는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는 정말로 괴로웠음이 틀림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나이를 먹는다는 건 미련하고 두려운 일이다. 나는 그 중학생 보다도 더 미련한 엄살쟁이일지 모른다. 세월만큼 쌓여가는 소중한 것들과 일상에 대한 미련이 커져가고, 그 미련들을 핑계 삼아 죽을 수 없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은 그런 것들에 기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괴로운 것일 뿐일 텐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죽고 싶지 않은 그저 나를 봐달라는, 사랑해 달라는 몸부림일 뿐인데.


그럼에도 나는 죽고 싶다. 아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이루어질 수도 없고, 계속 이대로 함께일 수도 없고, 나는 그저 떠나가는 걸 바라봐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럼에도 잔인하게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어? 나를 살고 싶게 도와주지도 않을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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