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42

꼬맹아, 술 적당히 먹어.

by 에스

42


내 생일날이 얼렁뚱땅 지나가고 일요일이 되었다.

그는 오늘 저녁에 잠깐 보자고 했었는데, 일요일 5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낮에 해놓았던 저녁밥을 먹은 후에야 연락이 왔다.

3학년에서 또 뭔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말하는 투에서 피곤함을 눈치챈 내가 먼저 오늘 안 봐도 된다고 하자,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저녁을 보냈다.


그가 이렇게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도,

내 생일을 늦게라도 같이 보내주지 않아도,

나는 화를 내거나 서운해할 그 어떤 자격도 없음을 또 한 번 실감하면서, 그저. 일요일 저녁을 보냈다.


3월 23일


학부모 설명회 날이다.

교직원 소개를 하기 위해 모두가 강당에 잠시 모였다. 그는 평소에도 잘 입고 다니지만, 오늘은 더 신경을 써서 파란 셔츠에 조끼, 재킷을 잘 어울리게 입었다.

그리고 내가 전에 사줬던 넥타이를 했는데 잘 어울렸다. 그 넥타이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또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사줘야지,라고 무심결에 생각해 버리고는 웃었다.


그리고는 얼굴 볼 틈 없이 각자 바빴다.

퇴근을 하고는 저녁을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다고 찡찡대던 그가 떠올랐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니 아주 예쁜 색감의 벚꽃 사진이 있길래 색연필로 따라 그렸다.

거의 열 시가 돼서 전화가 왔다. 원룸 앞이라며 잠깐 나오라며, 스타벅스 커피를 준다고 했다.

그는 원룸 현관문 바로 앞에 케이를 대 놓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케이 안에서 잠깐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수업준비를 하다가 오는 길이라고 해서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타벅스 모카라떼와 본인이 먹으려고 산 붕어싸만코 세 개 중에서 두 개를 내게 주었다.

나는 집에 올라와서 침대 위에 엎드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벚꽃 그림을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맘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그에게 보내주었다.

내일 우리 학년 회식이라고 하자, 술 적당히 마시라며, "꼬맹이"라고 불러주었다.


3월 24일


아침 등굣길에 늘 지나가는 파리바게뜨는, 내가 지나갈 때쯤이 8시 정도의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아마 나 같은 직장인을 위한 거겠지. 빵은 웬만해서는 안 사 먹지만 오늘은 들러서 그에게 줄 빵 두 개와 내가 먹을 거 한 개를 샀다. 학교에 와서는 우리 반 여자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그에게 보냈다. 워낙에 빵을 좋아하는 그는 정말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 떠오를 만큼의 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오후에는 학부모 한 분이 상담을 와서 거의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거의 끝나갈 즈음 교실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그였다. '감사합니다, 1학년 1반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뭐가 감사하냐고 묻는다. 웃음이 픽 나왔다.

학부모 상담 중이라고 끊고는 학부모를 보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도 당연히 '감사합니다, 3학년 4반입니다'라고 하길래 나도 똑같이 물어봐주었다.

그냥 별 용건 없이 전화한 거였길래, 우리는 그냥 몇 마디를 했다. 교실에 아무도 없는지, 말꼬리를 늘이는 애교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그런 말투는 자주 쓰지 않아서, 아주 가끔씩 나에게 그런 말투로 말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얼마 얘기도 못하고 퇴근시간이 되어 전화를 끊고는 회식을 하러 나갔다.


신기루, 같다.


아무리 생생하고 아무리 친절하고 아무리 나에게만 애교 섞인 말로 칭얼거려도,


잡을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이전 11화<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