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43

왜 하필이면 너처럼 어려운 사람이지

by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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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요일에 B의 학교에 생일 케이크를 보냈더니, 생각보다 더 감동받은 B가 저녁을 사겠다길래 수요일에 동네에서 만났다.

우리는 B가 추천한 고깃집에 가서 소주와 함께 먹었다. 나는 그동안의 동학년들 얘기와 은근히 힘든 스타일의 우리 부장에 대해 평소보다 수다스럽게 얘기했다.

간간히 호응해 주는 B와 함께 거의 소주 각 1병씩 먹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 먹고 근처 맥주집으로 갔다. 전에 봤던 잘생긴 사장님과 인사도 나누고, 맥주를 시키고 감자튀김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이 흘러,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걱정하는 B에게 혼자 갈 수 있다며 억지를 쓰고는 버스에 탔던 것은 기억이 난다. 몇 번 버스를 탄 건지도 모르는 채, 버스 안에서도 B와 통화를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순간에 버스에서 내려 있었고, 나는 무작정 추운 밤거리를 걸었다. 갈 때 하고 있었던 목도리는 이미 잃어버린 채였다.


시간 감각조차 잊은 채 하염없이 걷다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그 사람의 원룸 앞에 있었다.

중간중간 그에게 전화했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원룸 안으로 들어가, 그의 집 앞에 웅크려 앉아 또 전화를 했다. 아까 전에 보낸 카톡도 읽지 않은 걸 보니 또 어디선가 바쁜 모양이었다.

거의 11시였다. 추운 바닥에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남자인 듯, 나를 보더니 놀라는 소리를 냈다. 나를 깨우더니 뭐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친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친구한테 전화를 하라고 했다. 더듬거리며 핸드폰 전화부를 뒤져서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옆집남자는 당황한 눈치로 잠시 본인의 집에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서는 나에게 물 한 컵을 주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는 소리.

나는 계속 기다렸다. 또다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애인과 통화하며 올라오는 어떤 남자였는데, 나를 보더니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원룸을 나와 다시 걸었다. 의외로 우리 집과 가까웠구나,라고 생각하며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몸살이 난 것 같이 몸이 아팠다.

퇴근하자마자 돌아와서는 계속 잠만 잤다. 그동안 그에게서는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카톡에도 답문 하지 않은 채, 그는 그렇게 나에게 무심한 채 시간이 흘렀다.


밤이 되자 B에게서 괜찮냐며 연락이 왔다.

그날 나는 정말 가관이었다고 했다. 맥주를 먹은 시점부터 펑펑 울었다고 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전혀 운 기억이 없는데. 그리고는 요즘 힘들다며 있는 대로 주사를 부렸다며 놀려댔다.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필름이 끊기는 걸 보니 나이를 먹나 보다. 이젠 정말 술을 줄여야겠다.


다음 날 금요일, 나는 정말로 몸살이 났다.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조퇴를 내고 소아과에 들렀다.

집에 오는 길에 그날 옆집 남자가 생각나서는, 급하게 고마웠다는 메모를 써서 다시 그의 원룸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술에 만취된 상태로는 잘도 찾아갔던 그 길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찾아간 걸까. 스스로도 대단한 집착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찾아간 그 원룸에서, 나는 옆집 남자의 집에 메모를 붙여놓고는 돌아와서 잠을 잤다.

저녁 9시쯤 깨어나,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미안함과 서운함의 중간. 결국 그 어떤 안부도 묻지 않는 그의 무심함과 나의 집착. 술만 먹으면 이상해지는 나의 행동들.

결국엔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는, 그 어떤 말도 없이, 담에 얘기하자고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두렵다. 우리 둘 다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내가 자꾸 열려고만 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3월 29일


새삼 한심하다.

고작 사람 한 명 때문에 이렇게 마음 아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인데.

하필이면 왜 당신인지 싶기도 하다.


세상에 쉬운 사람은 널렸는데.

왜 하필이면 당신 같은 사람인지.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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