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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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근처 삼겹살집에서 첫 전체회식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벚꽃은 져가는 그날 오후의 분위기에 젖어 다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먹는 것 같았다.
우리도 우리 학년끼리 앉아 신나게 얘기하며 고기를 먹었다.
그는 원래 얼굴에 티가 많이 나지만 정말 많이 마신 듯 멀리서도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휙 나가버리고는 그대로 줄행랑이었다.
같이 도망가기로 해놓고는!!
그러고 나서 거의 곧바로 1차를 해산해서 나는 불이 나게 전화를, 문자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고 우리 학년 젊은이 넷과 따로 카페에 가서 조금 더 놀다가 해산했다.
집에 오는 길에 학교 근처에서 내려서 그의 집에 들렀다. 거의 습관 같다.
문 앞에 서서, 원룸 복도의 불이 꺼져 캄캄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뭘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서 있었다. 문 너머에는 분명 그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을 것이다. 얇은 문조차 열지 못한 채, 나에게는 그 문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원망스럽다.
문을 두드려볼까, 를 몇백 번을 고민하며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거의 30분을 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결국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갔다. 잘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문자가 왔다.
술 마셔서 뻗었네, 이런 구구절절한 문자. 아무 대답도 안 했더니, 학교에서 메신저로 죽겠다며 또 쪽지가 왔다.
하루 종일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결국 교실로 전화가 왔다.
나는 어차피 대답도 안 하는 사람, 카톡에서 지워버렸다고 했다(사실 정말 지워버렸다).
그는 절절매면서 카톡은 다시 살려달라며 찡찡댔다. 어차피 나의 결심은 그런 한 마디에 무너지고 마는 걸 나도, 그 사람도 뻔히 알고 있다.
4월 9일
또 무슨 객기가 도졌는지 내일 금요일에 서울 안 가면 놀아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토요일에 결혼식 사회를 보게 돼서 그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정말 짜증스럽게도, 어차피 약속 없었어도 안 볼 거 아니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그리고 그 생각이 맞을 거라는 게 너무나 슬펐다.
4월 13일
그가 오늘 대표수업을 하는 날이다.
퇴근하려고 내려오면서 잘했는지 전화를 했더니 자기도 지금 퇴근하려는 중이라며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충동적으로 만나서 근처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한 달 넘게 바쁜 척을 하던 그 사람에게 맺혀 있던 게 많았는지, 나는 있는 대로 꼬장을 부렸다.
성질은 내가 냈지만 그의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오고 나니,
몸에는 살점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가시가 박힌 것 같이 아팠다.
그리고 오늘의 상처를 기억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