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바닥 쿠션을 벗겨버렸다

5부 EP01. 책을 출판하다

by 에스

2025년이 되었다.

새해가 됨과 동시에 몸살이 났는지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싶어서 병원에 달려갔더니 A형 독감이라고 한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독감이란 녀석은 얼마나 센지, 약을 먹고 나서도 몇 주간 나를 힘들게 했다. 도대체 올해 얼마나 잘 되려고 이렇게 액땜을 심하게 하는 걸까, 하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편, 나는 이제껏 겪어보지 않았던 간절한 기분으로 새해가 되기를 기다렸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바로 3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제주 북페어'이다. 작년에는 1월 말에 참가 신청을 받아서 3월에 시행이 되었었는데, 아마 이번에도 비슷한 시기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작년에 북페어에 직접 가서 구경을 하며, '내년에는 나도 꼭 작가로서 참가해 봐야지!'하고 마음먹었었다.


2021년부터 브런치에 조금씩 끄적여왔던 내 글들. 그걸 북페어를 목표로 하나의 파일에 전부 합쳐보니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나왔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끈기가 매우 없는 성격인데, 이렇게 뭔가를 꾸준히 해서 책 한 권이 나왔다는 사실이 꽤 감격스러웠다. 나는 작가가 아니었기에 글의 수준은 형편없었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글을 모아 편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요즘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원고와 표지 양식을 지원해주고 있었으며, 출판과 유통까지 전부 그들이 대신해 준다. 이 얼마나 책을 쓰기 편한 세상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현실에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업 작가들은 속상할지도, 싶기도 했다.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원고 양식에 글을 전부 넣고, 소제목 글자 스타일을 하나하나 바꾸고, 오탈자를 검사하고, 각 페이지를 확인해서 목차를 넣고. 이제 제목만 남은 상황인데, 제목을 붙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무슨 제목을 써야 우울증 환자가 11년 차 직장을 때려치우고 제주에 내려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공방을 차리고 디자이너가 된 내용을 함축할 수 있을까.

나는 최와 B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다. 둘은 각자 다른 감성으로 여러 가지 시안을 내주었다. '우울한 내용의 에세이니까 감성적인 제목을 써요'라고 B가 말했고, '제목만 봐서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게 특이한 제목을 써요'라고 최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사람 모두 제목만 봐서 내용이 전부 짐작되는 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어렵다, 어려워. 회사에서 쉬는 시간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최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로 제목 당첨. 그 제목을 보더니 감성파 B는 이게 뭐냐며 진저리를 쳤다. '뭐 어때! 재밌잖아~' 나는 결국 생각했던 제목으로 편집을 끝냈다.


'고양이 발바닥 쿠션을 벗겨버렸다'


원고를 넘기고 표지를 등록하고 나니 나머지는 플랫폼에서 알아서 척척 해 주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각 서점에 입고 신청을 넣고, 플랫폼 자체 서점에 내 책을 등록해 주었다. 나는 책을 실물로 확인하기 위해 구입을 했다. 북페어에 가지고 갈 것까지 주문하느라 꽤 많은 양을 주문했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배송이 왔다. 생각보다 질이 좋고, 생각보다 두꺼웠다.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오다니. 이게 잘한 걸까. 이걸 누군가가 읽어도 되는 걸까.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할지 며칠간 고민했다. 분명 엄마는 책을 읽으며 우실 게다. 자기 탓이라고 자책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책의 후반부의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기에, 나는 편지와 함께 책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썼다. '이 모든 게 엄마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설에 본가를 가면 책을 드려야 겠다.

아직 제주시 홈페이지에 북페어 관련 공지글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들떠 있다. 내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힘으로 뭔가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내 다섯 고양이들로 굿즈를 만들어야 한다. 책이 어두운 내용이기 때문에 부스의 절반은 검정 색으로 'Dark side'라 이름 짓고, 나머지 절반은 흰색으로 'Light side'라고 이름 지을 생각인데, 라이트 사이드에 내 고양이들 굿즈를 넣을 생각이다. 내 사랑스러운 녀석들과, 나의 밝아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리고 지난주. 예약 방문한 정신과에서는 의사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들을 죽 듣고는 약을 줄여도 되겠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대신 밤에 너무 자주 깨는 것을 위해 밤에 먹는 비상약은 따로 처방해 주었다. 그걸 먹고 잤더니, 놀랍도록 효과가 좋아서 자는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물론 아침에 살짝 졸리고 속이 불편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매우 만족스럽다.


이렇게 새해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다니는 회사는 자회사에서 분리해 나와 새로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스타트업이라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당연하게도 매출은 나오지 않았고, 나와 최는 주 5일 근무를 주 3회로 줄이기까지 해야 했다. 대표님은 빨리 매출을 찍어서 주 3일을 회복해 주겠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같이 일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 같다.

공방과 디자인 업무는 겨우내 조용한 편이다. 이게 바로 비수기인가 싶을 정도로, 한가할 때가 많다. 조금만 더, 바빠지고, 조금만 더 웃을 날이 많고, 아니. 조금만 더 내가 웃으려고 해야겠다. 적극적인 내가 되기를. 도약하는 내가 되기를. 그래서 조금 더 빛나는 한 해를 만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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