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EP02. 채워주지 못할 공허함에 대하여
결혼 후 첫 시댁 방문의 순간이 찾아왔다.
설 명절인 것이다.
화, 수, 목 2박 3일의 설 명절의 절반을 시댁에서 보내야 함을 엄마에게 알리자,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대답은 하시지만, 내심 서운하신 것 같았다.
서운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모든 명절을 오롯이 우리 가족끼리 보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마침 이번 겨우내 일이 없어서 한가했던 터라 그냥 공방을 닫고 토요일에 미리 엄마를 보러 올라가기로 했다.
엄마는 화요일에 올 사위를 맞이할 준비를 토요일부터 하고 계셨다. 음식 재료를 사고, 네 명이 모여 앉을 만한 커다란 밥상을 사고, 손님방을 정리하고. 어마무시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음식 리스트를 보고 나는 이걸 어떻게 하루 만에 다 먹냐고 떼를 부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화요일 저녁에 사위가 오면 구절판과 잡채, 전, 기타 등등을 먹이고, 저녁을 먹고 나면 준비해 둔 만두 소와 반죽으로 만두를 빚고, 다음 날 아침에 만둣국을 끓여 먹고 보낸다, 가 엄마의 계획이었다. 이럴 때만 고집이 보통이 아닌 양반이다.
화요일이 오기 전까지 나는 엄마와 단둘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일을 보냈다.
온종일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일요일 오후에 유일하게 외출을 했는데, 중학교 동창들을 보기 위해서이다.
번화가의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만난 세 명의 동창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한 명은 중학생 때부터 사귄 첫 남자친구와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낳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병원에서 일하며 지금까지 번 돈으로 번듯한 아파트를 사서 혼자 여유롭게 살고 있으며, 마지막 한 명은 어머니의 가게를 도와 쉴 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삶들. 퇴사하기 전 직장의 사람들은 기계에 찍어낸 듯이 적정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 한 두 명을 낳고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전부였던 터라, 동창들의 다양한 삶들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냐, 결혼을 안 하고 있는데 괜찮냐, 앞으로 자녀계획은 있느냐, 등등. 무엇보다도 내가 궁금한 사항은 바로 딩크에 대한 것이었다.
젊은 딩크족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나, 그들이 10년, 20년을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삶은 쉽게 접할 수 없는데, 과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자식이 없을 때 행복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친구들 또한 자신들의 지인이자 결혼 초 딩크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답했지만, 그 후의 노년기에 대한 정보는 없는 듯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는 삶의 형태가 시작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는 것은 나를 답답하게 했다. 그들은 과연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있을까?
화요일 오후쯤 동생과 강이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는 그를 위해 구절판, 생선구이, 닭백숙, 그리고 밑반찬까지 상다리가 휘게 준비해 주셨다. 강은 황송해하며 밥에 닭고기까지 잘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다음날 먹을 만두를 빚고, 저녁 늦게까지 늘 그랬듯이 보드게임을 했다. 강은 워낙에 새나라의 어린이라 일찍 자는 편이었지만, 이미 이러한 우리 집의 풍습(?)을 각오한 듯 꽤 늦게까지 놀고 잠에 들었다. 그래봤자 12시이지만.
다음 날. 우리가 빚어 놓았던 만둣국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강의 가족을 보러 부산으로 향했다. 다행히 울산과 부산은 최근 경전철이 생겨서 예전보다는 빠르게 오갈 수 있었다. 우리는 잠시 어머님 집에 머물렀다가, 저녁이 되어 그의 누나의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다.
할머니는 올해 구순을 맞이하셨고, 때문에 설 명절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한 분 한 분 인사를 하고 누구인지를 익히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방에 겨우겨우 구겨져 앉았다.
아이들은 중학생 두 명과, 미취학 유치원생 한 명, 갓난아기 쌍둥이 두 명이었다. 어른들은 신이 나서 가져온 세뱃돈을 아이들에게 뿌렸고, 중학생 아이들은 돈을 받을 때만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핸드폰을 들여다봐서 우리를 빵 터지게 했다.
옆에 앉은 거의 두 세명의 어른들이 모두 나에게 말했다. '아이는 빨리 가져라', '가질 거면 저렇게 쌍둥이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등.
나는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그 공간이 지옥같이 고통스러워졌다. 그들에게 지금 나는 환영할 존재지만, 내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도 나를 구김 없이 반겨줄까? 나는 점점 더 아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고해지는데. 강은 아이를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강이 내 의사를 우선시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더해, 그의 친척들까지 만나서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결혼을 한 것이 잘한 일일까?
다른 모든 남자들에게 그런 것처럼, 결혼 적령기가 되면 놓아주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평생 이런 괴로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텐데,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누굴 만나도 되는 걸까?
모든 것이 무너질 듯 위태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