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EP03. 고통스럽고 고달픈 겨울
이번 제주의 겨울은 너무나 비수기였다.
공방, 프리랜서 디자이너 모두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수입이 없었다. 2월에 최저 수입을 찍고 나자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맞는 걸까.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일까, 낭떠러지는 아닐까. 나는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걸까. 이 비수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봄은 올까.
천만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단 1%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이어도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점이 그나마 내게 위안을 주었다.
나는 일주일 중 4일을 카페 오픈 아르바이트로 6시간을 일하고, 그러고 나서 공방으로 출근하고, 그 와중에 디자인 프리랜서 일이 들어오면 작업을 하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여전히 겨울은 너무나도 춥고 고달팠다.
강 역시 새로 옮긴 직장에서 월급이 너무 낮아 고생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번 돈 중 백만 원을 아파트 대출 이자 납부에 공헌했고, 나 역시 백만 원을 데이트통장 생활비로 입금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어지는 삶. 참 궁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초라해졌다. 초라해질수록 술이 마시고 싶고, 술을 먹을 때마다 돈을 쓴다. 그러면 그걸 보고 또다시 비참해지고, 그러면 다시 술을 찾는다, 의 반복이었다.
그런 와중에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 선물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카카오톡에 생일 알람이 뜨지 않도록 설정해 두었으나, 몇몇 친구들은 어떻게 알고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사람들과 우리 집에서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했다. 맛있는 안주를 시켜서 각자 가져온 술을 먹었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웃고 떠들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생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원체 힘들던 것이 더욱더 급격하게 힘이 들었다. 자살충동이 다시 찾아왔고, 근근이 이어지는 삶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병원 예약일에 의사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약을 증량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프로작'을 처음 처방해 주셨다.
프로작은 '플루옥세틴염산염'이라는 성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울증 약이다. 약 정보를 찾아보니 역시나 효능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많았다. 우울증 약 부작용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먹은 첫날부터 몸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기로 했다.
약을 먹은 지 삼일 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카페 오픈을 하러 출근하는 길이었다. 평소 아무 일도 없을 때의 내 기분의 상태는 '보통' 이거나, '보통 보다 조금 아래'에 가까웠다. 아르바이트를 간다거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근무를 할 때에는 '안 좋음'에 가깝다.
그런데 오늘은 놀랍게도 6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인데도 기분이 '좋음'인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업무를 시작했다. 오픈에 필요한 각종 일을 하고, 와중에 손님을 받고, 애벌 설거지를 해서 식기세척기에 식기를 담는 동안에도 기분은 이유 없이 좋았다.
이게 바로 프로작의 효능인 건가?! 정말 놀라웠다. 그 후로도 기분의 평균 상태는 보통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좋은 상태가 유지되었다.
약의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강과 대화하다가 문득 내가 유난히 힘들어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까지 십 년이 넘도록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을 해 왔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한 날에도, 힘들어서 일을 대충 한 날에도 월급은 똑같이 입금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프리랜서라는 것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불규칙한 수입에 적응이 덜 되었던 것이다. 힘든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자 마음이 굉장히 많이 놓였다.
예전처럼 매달 안정적일 수 없고, 내가 노력하면 수입이 많을 수도, 또는 적을 수도 있다.
그저 나는 제자리에서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달팽이처럼 느리더라도, 좋아하는 방향으로 걷자. 그러면 그 길이 꽃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