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함께 잊고 싶은 그대에게
비 오는 걸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광적으로 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비가 내리기 전.
흙과 공기가 차가워지는 냄새부터
나를 들뜨게 만든다. 그 습도 높은 냄새가 좋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창가에 꼭 붙어 앉아서 커피나 따뜻한 음료를 홀짝이며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비가 쏟아진다면?
더없이 행복하다. 쏴아아 하는 소리에
모든 괴로운 기억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들은 빗소리에 씻겨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귀를 시끄럽게 하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그 소리에 취해
모든 것을 깜빡할 수 있을 뿐…
비가 내리면
G.고릴라의 'Crash'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비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어째서인지 듣고 싶어진다.
'많이 다쳐서 5년 동안의 기억이 사라지면
행복할 거야, 정말 행복할 거야.
잊고 싶은데, 정말 잊고 싶은데.'
빗물에 씻겨 내려가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잊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동안의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싶은데.
제주에 있으니 요즘은 비보다는 눈이 더 많이 온다.
가끔은 비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