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
1부 EP19. 환멸감으로 가득한 직장
환멸감만이 가득했던 하루였다.
직장 동료 ㅂ언니가 지난달 돌연 회사를 쉬게 되었다. 알고 보니 고객에게서 민원이 들어왔는데, 너무나 악의적으로 언니를 노린 내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민원의 규모는 언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에 언니는 당분간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회사를 나오지 않는 동안 언니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고소장을 받았고,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내겠다는 협박을 받았으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했고, 변호사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언니의 사정을 알게 되고 나니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언제라도 언니의 처지에 놓이지 않으란 법이 없는 것이다. 그저 나는 운이 좋았을 뿐. 우리를 위해서 뭐든 해줄 것 같이 굴던 회사는 정작 이런 상황에 놓이자 언니를 지켜주지 않았고, 언니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오늘 언니가 탄원서를 받기 위해 회사에 왔다. 우리는 몇 달 만에 얼굴을 봤다. 언니는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늘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했던 예쁜 얼굴은 초췌했고,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우리는 현관 앞에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불면증 때문에 병원도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해주지 못했다. 내가 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 탄원서에 서명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따위의 말밖에 하지 못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살기 위해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홀로 이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그녀의 고통을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ㅂ언니는 내가 입사 4년 차에 진입했을 때 만난 사이이다. 당시 그녀는 30대 중반,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나 났지만 의외로 잘 맞았다. 업무 처리 방식도 비슷했고, 힘든 일과 끝에 같이 마시는 술은 너무 달고 맛있었다. 당시 언니의 아들들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우리가 밥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놀이방이 있는 음식점으로 골라서 다녔다.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다른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놀기도 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우리는 감자탕에 소주로 하루의 피곤함을 씻고는 했다.
언니는 인간적으로 보나 업무적으로 보나 멋진 사람이었다. 업무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면 반드시 기일 전에 미리 제출하려고 했고, 꼼꼼하고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리고 아랫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며 실수를 보듬어줄 줄 알았다. 한 번은 내가 다른 직장 동료에게 실수를 했는데, 언니는 나와 함께 그 사람에게 가서 부장으로서 대신 사과를 했다. 나는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만난 지 1년이 지나가던 때, 언니는 이혼을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법정 소송을 했고, 원만하게 끝나지 않아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니는 고급 아파트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나와서 투룸에서 살게 되었다. 아래층에서 아이들이 뛰는 것이 시끄럽다며 협박 비슷한 민원을 받던 설움을 견뎌야만 했다. 기나긴 소송 끝에 그녀는 이혼 절차를 마치고 아이 둘과 함께 부모님 곁으로 와서 나름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인생은 잠시도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듯, 각기 다른 방식으로 끈질기게 괴롭혔다.
퇴근하고 홀로 저녁밥을 준비하는 입이 몹시 썼다. 나는 소주 한 병을 따서 함께 먹으려고 했지만 술이 너무나 써서 결국 한 잔밖에 먹지 못했다.
직업 만족도는 내가 이 직업을 가진 후부터 꾸준히 하락 중이다. 봉사정신도, 사명감도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무서운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나는 민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을 할 뿐이다. 너무 대충 하지도, 너무 노력하지도 않게 적당히 남들과 똑같이. 그리고 이 점은 나를 너무나 환멸감에 차게 만든다.
그만두고 싶다. 다 그만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