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늙은 장화 신은 고양이

2부 EP05. 만두에 대하여

by 에스

오래간만에 본가에 오니 고양이 '만두'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몸무게가 너무 줄어서 사뿐해진 탓이다. 안아 든 몸뚱이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마도 이제 열세 살쯤 되었을 나의 고양이. 2011년에 나에게 왔으니 벌써 십 년이 넘게 함께 하고 있다.

2011년, 취업에 성공해서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한 내게 어느 날 만두가 다가왔다. 11월의 겨울, 평소처럼 걸어서 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집 앞 바로 골목에 주차된 트럭 아래에 고양이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너 잘 생겼구나!'하고 눈길을 한 번 주었다. 주황색 코숏 고양이는 귀엽게 생겼고, 도도하게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만두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고양이는 동네에서 자주 등장했다. 새끼는 아니었고, 이제 막 성묘가 된 것 같았다. 잘 생겼지만 꼬질꼬질한 상태로 우수에 젖어 길가에 앉아 있는 고양이 녀석이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녀석이 불쌍해 보여 편의점에서 사료 한 봉지를 사서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허겁지겁 사료를 먹어치웠다. 어느 정도 녀석을 지켜본 나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녀석은 부족했는지 나를 따라 집 현관문 앞까지 쫓아오는 것이었다. 당시 1층 원룸에 살고 있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서 건물 앞에 사료를 부어 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도 고양이는 우리 집으로 왔다. 고양이 기억력이 이렇게 좋은지 그때 알았다. 녀석은 우리 집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사료를 한 그릇 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현관문을 열자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나는 녀석을 어쩌지도 못한 채 그냥 두고 보았다. 겨울의 추운 날씨에 지칠 대로 지친 녀석은 우리 집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가장 따뜻한 방바닥의 한 구석에 털썩 엎어지더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는 그 뒤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 뒤로 녀석을 병원에 데려가 검사하고 예방접종을 하고, 중성화 수술을 해주었다. 나이는 대략 한 살 정도라고 한다. 이제 막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장난감과 간식을 사들이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만두는 내 가족이 되었다. 평소에는 까칠하기 짝이 없어서 다가오지도 않다가, 내가 울거나 슬픈 일이 있어서 앉아 있으면 곁으로 다가와 몸을 비비곤 했다. 고양이란, 정말이지 신비로운 생물체다.


그렇게, 10년 넘게 같이 살던 만두는 내가 제주로 내려오면서 엄마와 살게 되었다. 엄마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두를 맡아 주셨다. 물론 다른 어르신들처럼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다가, 점점 아이를 예뻐하게 되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 '오늘은 만두가 이랬고 저랬고, 사료를 많이 먹고, 똥을 화장실 밖에다 싸고, 털 때문에 매일매일 대청소 하는 것이 귀찮고...' 만두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신다. 만두를 제주로 데려와야 하나 고민이 많지만, 혼자 계실 엄마의 적적함을 생각하면 약간의 귀찮음과 함께 같이 지내게 하는 편이 더 나은가 싶기도 하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너무 안 씻어서 털이 꼬질꼬질하다. 나이가 열 살을 넘어가자 구내염이 생겼다. 입 안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루밍을 그만둔 지 꽤 되었다. 발치를 해주려고 했지만, 마취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생각을 접고 약물 치료만 하기로 했다. 나는 집에 온 김에 목욕을 시켜 주기로 했다. 목욕하기 직전, 현관 앞에 내보내서 광합성을 시켰다. 호기심도 없이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그저 햇빛 좋은 자리에 식빵을 굽는다. 고요하게 햇빛을 받는 내 늙은 고양이가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목욕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평소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던 녀석이 화장실만 들어가면 울부짖기 시작한다. 엄마와 나는 최대한 빨리 목욕을 시키려고 둘이서 땀을 뻘뻘 뺐다. 지옥의 목욕전쟁이 끝나고, 녀석이 털에 묻은 물을 부르르 털어낸다. 그래도 이번엔 쉬 안 지려서 다행이다. 미니 히터를 틀어주고 있으니 엉덩이를 히터에 딱 붙이고 아주 조금씩 그루밍을 한다. 씻고 나니 미모가 훤칠하다! 잠깐 하더니 그루밍은 이제 끝났나 보다. 적당히 말랐을 때 털을 한 번 빗겨주었다. 만두는 이불 위에 올라가 기분이 좋은지 냥모나이트를 시전해 주었다(냥모나이트: 고양이가 몸을 암모나이트처럼 둥글게 말고 있는 상태). 너무 사랑스럽다.


뒷 발바닥 털이 닳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열세 살. 언제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엄마도 만두도, 나도. 이렇게 서서히 늙어간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만두도 올라와서 팔에 꾹꾹이를 한다. 세상에, 발톱을 안 깎아서 너무나 아팠다. 나중에 씻으려고 옷을 벗었더니 팔에 발톱자국이 송송송 나 있었다. 바로 발톱을 깎아주었다.


죽음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내 말은 순 거짓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집착한다.

엄마와 만두가 정말로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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