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대동단결!
1부 EP08. 심리상담센터에 가다
살다 보면 우울증으로 대동단결하는 일도 있다.
최근에 직장 동료인 J 선배와 친해지게 되었다. J 선배는 내가 범접도 못할 만큼 긴 경력을 보유한 중년 여성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단 둘이 공간에 있게 되었는데, 그녀가 평소에 믿음직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내 우울증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버티기가 버겁노라고 얘기했더니 놀랍게도 그녀 또한 같은 증상을 앓고 있음을 고백해 왔다. 그녀 또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본인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고 한다. 결혼을 해서 자신만을 오롯이 사랑해 주는 아이를 낳고 나자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투병 중인 것이다. 그녀는 휴직이나 퇴직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제때 잘 치료받았으면 한다며 자신이 받았던 심리상담을 추천해 주었다. 심리상담이 완전한 치료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너무 힘이 들어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나는 곧바로 그 상담센터에 연락해서 상담일을 잡았다.
토요일, 상담일이 되었다.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상담센터는 아담한 대기공간과 두 개 정도의 상담공간을 갖추고 있었고,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나는 이름을 말하고 잠깐 대기하며 커피를 타 마셨다. 커피를 거의 다 홀짝였을 때쯤 예약했던 부원장님이 대기실로 나와 나를 맞이해 주셨다. 중년 남자분인 부원장님은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었다. 그는 나를 첫 번째 상담실로 안내했다.
우리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부원장님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A4용지의 맨 위에 내 이름과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는 내게 왜 심리상담을 신청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직업이 있고 가족들과도 화목하며, 상냥한 남자친구까지 있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매 순간 죽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는데 도저히 왜 죽고 싶은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찾아왔다고. 부원장님은 내 넋두리 같은 첫마디를 조용히 들어주셨다. 그리고 같이 그 이유를 찾아보자고 하셨다.
정신과에서 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심리검사지를 또 받았다. 이번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울증 수치가 높아 약물치료를 권한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미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부원장님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기억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모든 일들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 기억나는 것들-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엄마를 구타해서 엄마가 집을 나갔었던 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일, 며칠이 지나 큰엄마가 엄마를 다시 데리고 와서 가까스로 다시 살게 됐던 일-과 전학 간 학교에서의 왕따 사건, 아빠가 요양을 위해 이사 간 아파트 안방에 도박장을 벌여놓은 것을 문틈으로 봤던 일, 부모님의 이혼, 무료했던 대학 생활과 취업, 연애와 실연 등 기억나는 거의 모든 일들을 나이 순서대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총 8회 차의 상담 중 거의 6회 차까지가 내 삶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부원장님은 사건을 겪을 때의 나의 기분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내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속상한 감정들을 거의 표출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에도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부원장님은 그 점을 캐치해서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에스씨는 어렸을 적 자신의 감정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부모님이 그걸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에스씨 부모님은 그걸 해주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못하게 된 거죠.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티 내지 않으려고 한 경향이 많고요. 그러나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채 쌓이고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좋지 않은 쪽으로 표출된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감정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슬픈, 속상한, 화나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에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빠는 밖으로 싸돌았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셨다. 동생은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이었고,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열한 살의 나는 왕따를 당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눈물도 나는 법이다. 부모님이 이혼할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나?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감정들은 열쇠가 없는 어떤 문 뒤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상담 막바지 회차에는 잃어버린 감정들을 되찾고 표현하는 훈련이 진행되었다. 부정적/긍정적 감정 카드들을 분류하고 관련된 기억들을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부원장님은 누차 강조하셨다. 네 감정들은 모두 다 소중하다고. 숨기거나 막으려고 하면 더 큰 폭풍으로 다가온다고.
여기까지가 8회 차의 심리상담 내용이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상담 내용은 대충 머리에 그려졌었다. 또 과거 얘기를 하겠군, 또 불행한 가족사 얘기를 해야겠군, 결국 불행한 어린 시절이 원인이겠군. 상담은 내 예상대로 진행되었고, 내가 왜 아직도 죽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내 감정에 대해 파헤쳐보게 된 것은 예상외의 성과였다.
슬픔을 슬프다고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응어리가 되어 마음 한편에 남나 보다. 그것이 응축되어 단단한 돌이 되어 마음을 짓밟나 보다.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 나 자신의 마음에 눈을 돌리고,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많이 아팠구나, 많이 슬펐구나. 고생했어. 울어도 돼,라고.
J 선배는 결국 직장을 쉬다가 퇴사하셨다. 우리는 주말 어느 날 같이 밥을 먹었다. 심리상담 이야기, 내 심경의 변화, 그녀의 삶, 우울증 선배로서 나에게 해주는 충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8번의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내 마음의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도, 증상이 나아지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우울증을 계기로 든든한 내 편이 한 명 생긴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 후로 J 선배를 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가끔씩 통화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녀가 행복하기를, 가족의 끈끈한 사랑 속에서 아픔을 치유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