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없는 걸음
1부 EP07.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본가에 다녀왔다. 30분을 걸려 KTX 역에 가서 기차를 탄 다음 한 시간 반을 가고, 또다시 버스를 30분 동안 타고 엄마가 계신 집을 찾아간다. 대학생 때엔 네 시간 동안 시외버스를 타도 너끈하더니, 이제는 허리도 어깨도 아프다. 생각해야 할 건 더 많고 더욱 아프다.
엄마는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오늘 무슨 반찬을 먹고 싶은지 연실 물어보신다. 나는 수제비를 해달라고 대답했다. 주말 동안 오롯이 엄마와만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점심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KTX 역으로 가는 버스의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늙으신 엄마가 보인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꼭 감았다.
본가에서 돌아오니 기분이 무기력의 끝을 달렸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애초에 목표가 없었다. 순간순간 이루고 싶은 것들은 있다. 대학에 합격하기, 취업하기, 카페에서 책 읽기, 책상 리폼하기, 식물 키우기 등..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목표가 없다. 늘 없었다. 한 번도.
월급이 들어오는 날에는 집에 돈을 보낸다. 숨이 막힌다. 그렇지 않은 척 노력하지만 결국엔 비참하다. 가족들은 은연중에 내가 돈 많은 남자를 잡아서 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나는 연애조차 이제 지긋지긋하다. 내 존재가 빈 껍데기 같은데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 리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고,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어렵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건, 죽는 건 더 어렵다는 거다. 적어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버텨야 한다. 작은 목표라면 목표인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오래간만에 공원 산책을 했다. 우리 집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건물 바로 옆에 근린공원이 있다는 점이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면 한 바퀴 도는 데 5분 정도 걸린다. 공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는 아무 벤치에 앉아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완전히 질 때까지의 공원을 관찰한다.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날이 풀려서 그런지 공원은 점점 붐빈다. 생각 외로 미취학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저출산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공원은 아이들로 뒤덮인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켜보고 있음에 안심하며 뛰어논다.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는 어린아이도, 자전거로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조금 더 큰 아이도 있다. 어머니들은 벤치에 모여 수다를 떤다. 무등을 태워주는 아버지도 있다. 아이들의 깔깔거림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보기 좋았다. 그러나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곧바로 끔찍해졌다. 나를 닮은 아이, 평생을 책임질 아이, 가족... 견딜 수 없이 끔찍하다. 책임이라는 말은 내게 너무나 무거워서 두 손으로 들 수 없다. 손가락이 부러져 버릴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가정을 꾸린다면 그 가정은 불행할 것이다. 그러느니 혼자가 낫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참하다. 가족이 없다면 결국 나이 들어 외롭게 홀로 남을 것이다. 그게 두렵지만 가족을 이루고 싶진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뭘 위해 살아야 할지도. 이 세상에 서 있는 게 낯설고 버겁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나는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죽음 뒤 세계가 있다면 거기로 가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치열하고 복잡한 이 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