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아파트야, 안녕.

2부 EP20. 이사

by 에스

청주 집 이사 전날이 되어 육지로 올라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정신과 병원이다. 우울증 검사를 한 지 1년이 되어 다시 심리검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1년 전처럼 내게 심리검사 문항이 담긴 태블릿 PC를 건네주고 따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검사에 응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1년 전에 보았을 몇 백 문항의 심리검사를 다시 하는데, 문구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검사를 끝내고 잠시 대기한 후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모니터로 검사 수치를 보여주시면서 설명해 주셨다. 우울수치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정상범위가 아니라 매우 높은 편이었다. 불안수치, 대인공포 수치는 외려 1년 전보다 높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퇴사를 하고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다 보니 불안이 커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1년간의 치료를 했으나, 뚜렷하게 긍정정이라고 할 만한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선생님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나마 조금 줄였던 약을 다시 증량하고, 한 달 뒤에 다시 오기로 했다.


집에 와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짐들을 중고거래로 넘기고 도시가스를 철거했다. 도저히 안 팔리는 물건들을 엄청나게 헐값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 집은 시장통처럼 북적여서 아예 현관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수납형의 더블 사이즈 침대와 매트리스는 결국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용달 아저씨를 불렀다. 용달 아저씨는 오시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매트리스를 내다 놓고 침대 프레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힘을 합쳐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재활용 처리장에 내놓고 폐기물 신고를 했다. 아저씨는 4만 원을 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만 원을 더 드렸다. 가전, 가구 폐기처리 센터에서는 내 낡은 침대와 책상을 아무도 처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달 아저씨를 보내고, 또다시 저녁 내내 중고거래를 했다.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 제주로 보낼 택배를 싸고 나서야 짐정리는 끝이 났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는 텅 비어서 소리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생명체가 없는 집인데도 미안한 기분이었다. 더 예쁘게 꾸며줄 수 있었는데. 빈 집을 보니 어쩐지 견딜 수가 없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전 직장 동료 동생을 불렀다. 나이가 네 살 어린 여자 동생은 한걸음에 우리 집 앞으로 달려와 주었다. 우리는 집 앞 맥주집에 들어가서 떡볶이와 맥주를 먹으며 그동안의 근황을 얘기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이야기할 내용이 산더미였다. 그녀 또한 할 말이 많았다. 직장에서 상사 한 명이 본인에 대해 은근히 안 좋게 얘기를 하고 있다며 속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그녀는 끝끝내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거라며, 속앓이를 했다. 나는 그녀 대신 쌍욕을 해주었다. 그리고 직원들 중 또다시 한 명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회사를 쉬고 있다고 했다. 나와도 같이 근무했었던 동생이라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이쯤 되면 정말 문제가 많다고 우리 둘 다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먹다 남은 맥주를 마시는 것 외엔.

밤 11시쯤 집에 들어오니 집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덮을 이불이 없어서 택배로 부치려고 놔둔 패딩 점퍼를 덮고 맨바닥에 누웠다. 술기운에 약간 몽롱했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까무룩 잠이 들고 났더니 아침이 되었다. 일찍 일어나서 택배짐을 싸고 있으니 승계자 부부가 왔다. 우리는 관리사무실 아저씨를 불러서 최종 집 상태 점검을 했다. 집은 대체적으로 깨끗한 편이라 화장실 환풍기 및 기타 수리비용으로 33000만 부담하면 되었다. 벽걸이 TV가 남긴 못자국에도 수리비용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퇴거 확인서를 받고 나오니 비로소 내 집이 사라진 것이 실감 났다.


안녕, 청주.


점심쯤 되자 전세 보증금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생전 처음으로 통장에 1억 원이 넘는 돈이 찍힌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기념으로 캡처해 둔 후 곧바로 전세대출을 상환했다. 통장은 다시 텅장이 되었다.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오후 4시라서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다. 나는 공항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비행기를 탔다. 강이 공항으로 데리러 나와 있었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내 집이 있는 노형동으로 돌아왔다.


9년간 원룸을 전전하면서 살다가, 비로소 보답 같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3년을 채우지 못했다. 행복은 집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노형동의 작디작은 원룸으로 돌아와 옵션으로 딸린 낡은 침대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는데도 기분은 비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족쇄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이제 이 작은 집에서, 나를 살고 싶게 해 줄 어떤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부디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전 19화함께 그려나가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