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직 준비 (1)

아니, 지방 이전이 대체 무슨 말이오

by Sol Kim

에너지 공기업 재무부서에서의 업무는 꽤나 적성에 잘 맞았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재무를 좋아했던 나에게 외환과 파생상품 거래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 일은 성취감을 넘어 때로는 즐거움마저 선사했다. 거래 상대방인 IB (투자은행) 담당자들과 때로는 웃으며 어떨 때는 다투며 거래를 하고 실무를 배우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고. 해외 기업 인수 프로젝트에서 회사 역사상 최초로 FX Option 거래를 체결하고 이를 통해 수십억 원의 인수 비용을 절감했던 경험은 아직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사실 신입사원이 이런 일들을 맡아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내가 부서 배치를 받자마자 담당 과장이 해외 사무소로 전출 간 덕에 처음부터 그가 하던 업무를 전부 떠맡아야 했다. 당연히 처음엔 엄청나게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좋든 싫든 많은 것을 배웠고 타 부서 사람들과 협업해야 했으며, 어느샌가 팀장이 일을 믿고 맡기는 걸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이 뿐 아니라 팀원들도 다들 좋았으며, 주말마다 하는 회사 야구부 활동도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부서장 C (불)팀장 B (얼음)의 콜라보는 회사 생활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건 마지막 짚가리 하나라 했던가? '지방이전' 이슈가 마지막 결정타를 넣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혁신도시'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졌다. 공공기관과 연구기관을 지방으로 보내서 해당 도시를 지역 거점지역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당하는 (?) 입장에서 혁신도시 세부 계획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는데, '이 기관이 이 지역으로 가면 지역과 회사에 어떤 이익이 되는지' 부분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전기 공기업은 나주, 가스 공기업은 대구, 석유 공기업은 울산' 식의 무성의한 배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내라 하시니 보내야지. 어차피 내가 가는 것도 아닌데 뭘'이라는 담당 공무원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면 너무 시니컬한 걸까?


분명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대전제는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기 힘들지만, 연고도 지인도 없는 지역으로의 이사가 내 일이 된다면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입사 당시만 해도 지방 이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답은 사내에서건 사외에서건 한결같았다. "야, 그게 되겠냐? 그거 노무현 정권 때부터 나오던 얘긴데..." 하지만 지방 이전 준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신사옥 부지 구입이 공표되자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이직자가 생겼지만 당시 사장은 "요새 같은 글로벌 시대에 수도권에 있든 지방에 있든 무슨 차이인가?"식의 현실감 없는 이야기를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긴 본인은 몇 년 후면 갈 사람이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 수험생 자녀를 둔 아버지나 결혼 적령기 처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실제로 지방 이전을 완료하기까지 많은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빠져나간 것을 고려해보면 사장의 현실 인식은 실제와 꽤 괴리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그 당시 어머니의 건강이 꽤나 좋지 않았기에 지방 근무는 생각하기 힘들었으며, 사무실의 지독한 상사들과 더불어 모든 상황이 나를 이직으로 몰아가는 느낌이었다. 매일 집에 11시 넘어 들어왔지만 어쩔 수 없이 수험서의 묵은 먼지를 떨어내고 책상에 앉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실제로 제대로 공부한 것은 금융 공기업 입사 시험 전 2~3주간 출퇴근길에 작년 시험 때 정리해놓은 오답노트를 들여다본 것 정도다. 그나마 2010년 상반기에 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 재무 관련 국제 자격증) 1차 시험 준비를 하면서 재무 관련 내용을 복습해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2010년 10월 어느 토요일, 두 번째 금융 공기업 입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