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인 리그는 한국이랑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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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나무 배트의 사용이었다. 한국 리그에서는 사실 나무 배트를 쓸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일반적인 한국 사회인 투수들의 구속 - 80~110km - 에서는 큰 문제라고 느꼈던 적이 없다. 휘두르는 게 좀 힘들고 공의 비거리가 좀 줄어들지 몰라도 어쨌든 중심에 맞추면 공이 외야로 나갔으니까. 하지만 공이 75마일 (120km)을 넘어가는 순간, 나무배트는 어마어마한 족쇄가 되었다.
야구 경험이 없으신 많은 독자들께서는 아마도 '아니, 배트가 뭐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다고?'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설령 같은 무게라 할 지라도 나무 배트와 금속 배트는 '아주 많이 다르다'.
금속 배트의 경우 (왼쪽 그림) 배럴의 중심을 비울 수 있기에 무게중심이 핸들 쪽으로 내려와 있어 나무 배트 (오른쪽) 보다 원활한 스윙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뿐 아니라 배럴의 Sweet Spot (공을 쳤을 때 비거리가 제일 길게 나오는 부분) 또한 나무 배트보다 넓기 때문에 정타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타격 생산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속이 나무보다 탄성이 높아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 나무 배트로 헛스윙할 공이 금속 배트로는 커트가 되고, 내야 뜬 공으로 아웃될 타구가 내야수 머리를 넘는 안타가 되며, 외야수가 잡을만한 타구가 장타가 되거나 담장을 넘어가게 된다.
물론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들도 나무배트를 사용했다. 다만 유소년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으며 (필자가 뛰었던 Austin Braves의 경우 필자 외의 전원이 고등학교/대학교에서 야구를 했으며 평균 야구 경력이 20년이 넘는다) 신체조건까지 우월한 데다 빠른 공에도 익숙한 이들과는 달리, 나는 엄청나게 빨라진 투구와 나무 배트라는 두 가지 악조건과 싸워야 했다. '공만 빠른 거면 칠수 있을것 같은데 이놈의 나무 배트...'라고 생각하며 덕아웃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게 몇번인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리그 수준별로 선출(선수 출신,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야구 경험자)의 숫자 및 포지션 규제가 굉장히 엄격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 4부 리그: 선출 출전 불가
- 3부 리그: 선출 1명 출전 가능하나 투포수 금지
- 2부 리그 선출 2명 출전 가능하나 투수 금지
- 1부 리그: 선출 제한 없으나 투구 이닝 제한
AMBL의 경우 리그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선출이다 보니 경험이 풍부한 건 물론이거니와 야구의 기본기 - 타격, 송구, 포구, 수비 커버 및 백업, 주루, 번트 -에 매우 충실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도 나름 10년 가까이 야구를 했고 다양한 레슨을 받았기에 한국에서는 선수들의 기본기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었으나 미국에서는 내 할 일을 제대로 하기에도 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리그의 경우 많은 경우 구장 상태가 좋지 않아 (i.e. 모래 운동장) 수비 강화를 위해 경기 전 수비 훈련을 필수적으로 실시하나, 대부분의 미국 야구장은 상태가 매우 좋고 선수들의 기본기 또한 충실하기에 수비 훈련은 매우 간단히 시행하며 주로 케이지에서의 배팅 훈련에 경기 전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한국 리그의 경우 타자 일순 (한 이닝에서 타격 라인업의 선수들이 모두 타격을 마치는 것)도 심심찮게 일어나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미국 리그의 게임은 많은 경우 굉장히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대부분의 이닝이 3~5명의 타자로 마무리되며, 경기력이 어지간히 차이 나지 않는 경우 두 자릿수 득점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투수 및 수비의 기량이 높아 진루를 최소화하며, 풋웍, 주자 견제, 빠른 송구 등으로 주자의 추가 진루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한국 2,3부 리그 수준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최소한 2루, 많은 경우 3루까지 도루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AMBL에서 도루는 매우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시도할 수 있는 도박이었다. 타이밍 잘 잡아서 뛰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유 있게 2루에서 잡혀서 이닝이 끝났을 때의 그 허무함이란..
2~3부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타격 기록 및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했던 나에게도 미국 리그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다행히 지금 살고 있는 Virginia Fairfax는 Texas Austin 수준의 매우 경쟁적인 미국 리그에서부터 3~4부 수준의 한국인 리그까지 다양한 기회가 존재하는 곳이다. '메이저 진출 & 선진야구 도전'을 외쳤던 2017년처럼 자신감에 차 있지는 않지만, 능력이 되는 한 다양한 리그에서 보다 많은 선수들과 상대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