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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21. 2021

야구하다 부러진 이야기

슬라이딩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한국 사회인 야구가 커피라면 텍사스에서의 야구는 TOP였다



미국에서 덥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텍사스 주의 강렬한 태양 아래 한낮 기온은 손쉽게 화씨 100도 (섭씨 37도)를 넘어가고, 이럴 때 외야에서 멍하니 서있으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땀이 너무 많이 흘러 한 경기 동안 1갤런 (3.75리터) 짜리 생수병을 다 비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이런 날씨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지나야 하냐?”라고 물었을 때 “Nobody gets used to this kind (이런 건 누구도 익숙해질 수 없어)”라고 말하던 팀원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물론 날씨만 강렬했던 것은 아니다. 야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Texas는 California, Florida와 더불어 야구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는 주 중 하나이다. 그 말인즉슨 진지하게 야구를 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리그 내에는 전직 MLB 선발투수였던 Armando Galarraga를 필두로 AAA나 AA에서 뛰다가 은퇴한 선수들도 종종 있었고, 필자가 뛰던 Braves에서도 전직 독립리그 선수 1년여 같이 운동하다가 다시 독립리그 도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아직도 놀라운 것은 이 친구가 클린업 트리오 – 3,4,5번 타자 – 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긴 내 눈에도 기존 클린업의 타격 실력이 더 나았던 것 같긴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리그에 연착륙하지 못했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연평균 슬래시 라인 .500/.600/1.000 (각각 타율, 출루율, 장타율)을 기록하던 나에게 (한 경기 5번 타석에 들어가서 2루타 2개 & 볼넷 1개씩 1년 내내 꾸준히 적립해야 저 기록이 나온다) 첫 10타석 무안타라는 기록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참담함을 불러왔다. 


'이게 대체 뭐지?'

‘아직 시차 적응이 안되었나?’

‘나무배트가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가?’

’뭔가 보여주려고 몸이 굳은 건가?’ 


다양한 고민에 머리가 복잡해지니 타석에서도 과감히 스윙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가 카운트가 몰려 삼진을 당하거나 빗맞은 땅볼로 물러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렇기에 11번째 타석에서 터진 우익수 넘기는 2루타는 말 그대로 가뭄의 단비이자 앞으로 나의 미국 야구 생활을 축복하는 예표라고 생각했다. 








... 바로 다음 경기에서 다리가 부러지기 전까지는









특별한 징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지무지하게 더웠고, 평소와 똑같이 캐치볼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게임을 시작했다. 상대 팀 투수는 80마일을 넘나드는 공을 던지는 데다 키까지 커서 공이 훨씬 위력적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이전에는 제구에 문제가 없었던 이 친구의 공이 내 타석에서는 헬멧으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정말 본능적으로 팔꿈치에 찬 암가드로 얼굴을 막아서 직격만은 피하고 쓰려졌는데, 땅에 누워서도 몇 초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투수가 다가와서 ‘야 미안하다. 공이 손에서 빠졌어’라고 사과하고 내가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라고 답했던 것은 기억나지만 1루 베이스로 걸어 나가면서도 뭔가 붕 뜬 듯한 현실감 없는 기분이었다


이때 ‘오늘은 날이 아니구나’ 하면서 몸을 사렸어야 했는데 왜 굳이 멀쩡할 때도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 2루 도루를 시도했을까? 스타트도 늦었던 것 같고 2루수도 길을 막고 공을 받으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조금 늦은 타이밍에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그 이후에 기억나는 건 뭔가 ‘투둑’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났고 난 어느샌가 왼쪽 발목을 붙들고 뒹굴며 신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의지할 가족이나 친척도 근처에 없었던 데다 새로운 땅과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겪게 되었던 일이라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뎠나 싶다. 감사한 것은 내 주변엔 친절의 화신이었던 AirBnB 숙소의 주인 Nader와 Jila 부부가 있었고, 학교 riding부터 간단한 부탁까지 자기 일처럼 도와준 MBA 동기 윤성이가 있었으며, 사고가 났을 때 응급실을 함께 방문해주고 매일같이 안부를 묻던 팀원 Andrew가 있었다. 또한 장인어른께서도 와이프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오셔서 여러 일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면이 안 서는 일이기에 부디 다시는 주변에 이런 폐를 끼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평생 이럴 일이 없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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