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와 와이프의 여권 사진을 찍으러 갔다. 구글 평점이 5점 만점에 겨우 4점을 찍은 곳이라 혹시나 뭔가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닌가 약간 걱정했지만, 작은 쇼핑몰 구석에 있는 사진관은 깔끔했고 사장님도 정직했다. '1 Hour Photo'라는 간판을 보고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사장님은 쿨하게 '10분만 기다려. 금방 해 줄게'라고 이야기했다. 세상에. 미국에서 예상보다 더 빨리 되는 일이 있다니!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 건지 미국에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사진을 기다리면서 가게를 둘러보는데, 사장님의 부인이 와서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알아요? 우리 가게에 지난주에 강도 들었어요"
한국도 그렇겠지만 미국도 장사를 하다 보면 별 꼴을 다 보게 된다고 하며, 좀도둑이나 강도도 그중 하나다. 특히 미국은 총기 소유가 자유롭기에, 강도가 복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가게에 쳐들어오면 계산대 아래에 총을 비치해놓지 않는 이상 섣불리 맞서 싸울 수도 없다. 돈이나 물건만 가져가면 다행이며 재수 없으면 총 맞고 비명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장님 부인의 말로는 아무도 없는 새벽시간에 강도들이 그 쇼핑몰에 있는 가게 몇 개를 연속해서 순식간에 털어갔다고 한다. CCTV 영상을 폰으로 보여주는데, 복면을 쓴 몇 명의 남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카운터를 뛰어넘고 금고를 들고나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만약 이 사건이 늦은 밤 시간에 주인 혼자 있을 때 벌어졌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어휴, 이만하길 다행이네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강도당한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한 거지?'하는 생각에 순간 찔끔했지만, 그 말을 들은 부인이 웃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신속한 백신 접종으로 인해 COVID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서 - 그래 봐야 아직도 일당 5만 명 수준이다 - 미국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격리로 인한 스트레스와 실직 등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인지 각종 강력 범죄 및 총기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상당히 안전한 곳인 우리 동네도 절도나 차량 파손 등의 뉴스가 간간히 들리고 있고. 벌써 미국에 온 지 4년이나 지났음에도, 이럴 때마다 내가 남의 땅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