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떨어진 미국 취업비자 (H1B)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한다 하더라도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비자 (H1B) 혹은 영주권을 취득해야 한다. 영주권은 최소 2~3년, 길게는 10년 이상도 걸리기에 대부분 취업비자를 먼저 취득한 뒤 영주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문제는 미국의 취업비자 발급이 추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으로 비자 개수가 정해져 있고 (약 8만 5천 개) 받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서 있으니 보통 학사는 약 20~30%, 석사는 약 40%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 뚫지 못한다면? 짐을 싸든가, 운 좋게 해외 지사가 있는 큰 회사의 경우 해외 지사로 가서 내년 추첨을 기다리든가...
2020년 3월 말, 취업비자 추첨에서 떨어졌고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학교 진학을 통해 학생 신분을 유지하며 일하는 방법을 권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잠재적인 리스크가 있는 방식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의 자폐로 인해 가급적 한국행을 피하고 (혹은 늦추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일이 적지 않은 이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수업까지 듣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금전적/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다 포기하고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2020년을 잘 버텨 내었고 2021년 다시 한번 취업비자를 접수했다. 설마 석사 학위를 가져서 당첨 확률이 높은 내가 두 번 연속으로 떨어지겠어?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이번에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시겠지...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탈락이었다. 회사에서 작년부터 총 3명이 비자 추첨을 들어갔는데 작년에 한 명, 올해 나머지 한 명이 당첨되고 나만 떨어진 채로 남았다는 사실은 씁쓸함과 좌절감을 더했다. 이렇게까지 운이 안 좋을 수도 있구나. 운이 아닌가? 그냥 한국에 돌아가라는 뜻일까? 휴일이었지만 팀 매니저와 임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2년 동안 고마웠다. 비자가 안 되어서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다'
모든 길이 닫히고 더 버틸 힘도 남지 않았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해결책이 나왔다. 삶이 더 빡빡해지긴 하겠지만 어쨌든 학교 졸업 전 남은 1년 동안 버틸 수는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리스크는 더 커졌지만 어차피 이게 없으면 돌아가야 하는 마당에 징징댈 수는 없다. 어찌되었건, 이제 남은 방법이라고는 앞으로 1년간 영주권이 빨리 진행되는 것뿐이다. 안되면 거기서 끝인 거고. 웃기게 들리겠지만 상황이 악화되니 오히려 마음은 이전보다 더 편안해졌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도 없게 상황이 명확해졌으니까.
미국에서 정착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불법 체류를 몇년간 하면서 버틴 분, 닭공장/도넛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신분을 얻은 분, 서류 접수 후 몇 년간 감감무소식인 기간을 보내며 끝내 영주권을 받은 분 등. 물론 내가 그들보다 힘들게 지낸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부분은 취업 비자를 연장하며 근근이 버틸 수 있는 경우다. 나는 최악의 경우 1년짜리 시한부 미국 생활이 남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영주권이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큰 문제는 없지만, 내 비자와 영주권은 여태껏 worst case로만 진행되어 왔으니 마냥 낙관하기도 어렵다. 하나님이 나를 미국에 있게 하실 계획인지 한국에 보내실 것인지라도 알면 마음이 편할 텐데 아무리 기도해도 답답한 마음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는 듯한 이 끔찍한 기분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한줄기 빛이라도 있으면 그에 의지하며 가련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