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이런 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이내믹했다. 상반기에는 취업비자가 작년에 이어 또 떨어짐에 좌절하며 한국에 돌아가기 반보 직전까지 갔었고, 하반기엔 영주권 여러 절차가 기적처럼 풀리면서 멘털이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 사이를 오갔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어떨 때는 좋은 선후배들과 기분 좋게 일했지만, 연말 프로젝트에서는 맞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영주권만 받으면 두고 보자' 투덜거려야 했다. 브런치를 통해 연이 닿은 출판사에서 첫 e-book인 '자폐, 함께 걸어요' (https://buk.io/103.0.0.92)를 출간했고, 와이프의 자폐 관련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IMsMYLwT_Ynz3z5nXOVbyA) 콘텐츠 작업을 도우는 동시에 자폐인을 위한 웹사이트 (https://specialneedsrus.com/)를 개설하기도 했다.
정신없고 숨 가쁘게 살았던 일상과 달리 2021년의 야구는 팀 이적도 없고 큰 부상도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한국 리그와 미국 리그 합쳐서 총 38경기를 치렀고, 수준 차이가 심한 두 개의 리그에 동시에 참가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 오전에 140km의 공을 보고 오후에 80km짜리 공을 보면 '도대체 어느 쪽에 맞춰야 되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 다행히 양 리그에서 모두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 리그 - DMV Korean Baseball League)
총 26경기 117타석 85타수 49안타 (2루타 11, 3루타 5, 홈런 4) 32 사사구
타율. 576 출루율. 692 장타율. 965 OPS 1.657
작년 대비 OPS는 소폭 감소했지만 타구의 질은 오히려 대폭 좋아졌다. 시즌을 준비하며 10여 년간 사용하던 토탭 (Toe-tap, 앞발을 가볍게 디디며 타이밍을 맞추는 타격폼) 대신 레그킥 (Leg-kick, 앞발을 들어 올리며 타이밍을 맞추는 타격폼) 장착을 시도했다. 레그킥은 앞으로 체중이동을 하며 공을 타격하기에 이전보다 컨택이 조금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 대가로 더 빠른 배트 스피드와 비거리를 얻었다. 올해 2게임 연속 홈런을 치며 상대 팀들의 경계 대상이 된 탓에 상대 외야수들이 깊은 곳에서 수비를 했고, 이로 인해 장타가 될 타구들이 잡히거나 3루타가 될 타구가 2루타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작년보다 더 좋은 기록이 나왔으리라. 다른 걸 다 떠나서 30 경기도 뛰지 않았는데 4개나 담장을 넘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미국 리그 - DCMSBL)
총 12경기 43타석 35타수 8안타 (2루타 3) 8 사사구
타율. 229 출루율. 372 장타율. 314 OPS. 686
한국리그 성적 대비 1/3 토막난 미국 리그 성적이 말해주는 것처럼, 한인 리그와 미국 리그의 수준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애초에 한인 리그 대다수의 구성원이 아마추어인 반면 미국 리그는 거의 모두가 고등학교/대학교 선수 출신이거나 전직 프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최소 20~30km는 차이나는 투수들의 구속, 감탄이 나는 야수들의 수비, 반발력이 적은 배트만 사용해야 하는 리그 규정 등이 겹치다 보니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 해도 타율 4할을 넘기기는 정말 어렵고, 나는 고작 타율 2할을 쳐내려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텍사스에 있을 때처럼 아예 미국 리그만 참가했으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 텐데, 여기서는 한인 리그와 병행한 탓에 오전에 80km의 공을 보다가 불과 몇 시간 후 120~140km의 공을 상대하기도 했으니 애초에 내가 프로급의 실력이 아닌 다음에야 잘하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쉬워 꼼꼼히 적어놓기는 하지만 기록은 어디까지나 기록일 뿐. 올해도 새로운 야구가 시작된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몸이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지는 요즈음, 그저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완주하기만 해도 감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