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판정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야구의 타격은 모든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기능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고작 지름 7cm 내외의 공이 120~160km/h의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며 기기묘묘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걸 7cm 지름의 야구 방망이로 쳐내서 9명의 수비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18.4m 앞의 투수가 전력으로 던진 공을 치기 위해서 타자는 고작 0.15초 안에 이 공을 칠지 말지 판단을 내려야 하며, 설령 기가 막히게 쳐낸다 하더라도 프로 레벨의 수비수는 어지간한 타구는 다 건져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고작 열 번 시도에 세 번 안타를 쳐내는 게 고작이어도 그를 '3할 타자'라 부르며 정교한 타격 기술에 칭송을 보내는 것이다. 70%의 시도를 실패하는 선수를 고용하는 다른 종목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새삼 타격이 얼마나 어려운 행위인지 느낄 수 있다.
야구에서는 타자에게 총 세 번의 타격 기회를 준다. 타자의 신장에 따라 정해진 스트라이크 존이 있고 (무릎에서 팔꿈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투수는 그 존 안으로 공을 던져 타자를 공격하는데, 만약 타자가 존에 들어온 공을 세 번 흘려보내거나 타격을 실패한다면 그는 타석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삼진 (三振, Strikeout)이라 하며, 심판들은 보통 역동적인 동작으로 타자가 삼진 당했음을 선언하며 경기의 흥을 돋운다.
나는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유형의 타자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컨택에는 자신이 있었고, 꾸준한 레슨과 10여 년의 실전 경험을 통해 타격 기술과 선구안이 아마추어로서는 꽤나 높은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부 이상 수준이었던 Texas Austin의 리그에서도 볼넷을 꽤나 골랐고, Virginia의 미국 리그에서도 삼진은 두 경기에 하나 수준이다. 특히 지금 뛰는 한국 리그의 경우 대부분의 투구가 50~60마일 수준이라 어지간한 직구와 변화구는 다 컨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땅볼이나 뜬 공으로 아웃될지언정 삼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아무리 스트라이크 존이 야구 규정에 정해져 있다 해도 심판마다 다들 고유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경계선에 걸친 투구의 경우 어느 날은 볼이 되고 어느 날은 스트라이크가 된다 (그렇기에 경기 초반 주심의 판정 경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의할 수 없는 볼 판정에 삼진을 당하고 심판에게 악감정을 가지거나 항의를 할 때도 있지만, 인간이 판정을 하는 이상 이건 타자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경기 중반이 지나 승부도 어느 정도 기울어 맘 편하게 들어섰던 타석.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에 이미 한 게임을 하며 체력을 빼고 왔던 터라 투수의 공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기껏 휘둘러도 타이밍도 잘 맞지 않았다. 3 볼 1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멀찍이 공이 날아오길래 '볼넷이구나' 싶어 걸어 나가려는 순간 들려오던 스트라이크 콜. 경기 초반부터 존이 이상하다는 건 우리 팀 상대팀 가리지 않고 느끼고 있었기에 볼 판정에 뭐라고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심판의 동작이 상당히 거창하다.
... 저기요? 설령 이게 스트라이크라 칩시다. 그래도 3 볼 2 스트라이크거든요?
심판은 끝끝내 삼진이라는 자기의 주장을 바꾸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야구를 해왔지만 이런 어이없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화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경기도 이겨가고 있겠다 집에나 일찍 가자 싶어 걸어 나왔지만, 결국 다음날 리그 운영진에게 공식 Complaint을 제출하여 해당 심판의 배제를 요청해야 했다. 만약 이 사람이 중요한 플레이오프 경기 팽팽한 상황에서 이런 실수를 또 한다면, 자칫 일 년간 열심히 흘린 누군가의 땀이 허망하게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미국에서 야구하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는 좀 덜 겪어도 괜찮을 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