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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14. 2022

미국 하원의원의 도움

나 같은 초보 이민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신분의 문제이다. 최소 영주권을 취득할 때까지는 취업도 이직도 창업도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힘들뿐더러, 언제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영주권 취득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상황에도 이를 악물며 버티곤 한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영주권 절차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많은 변수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평균 1~2년을 거쳐 신분 변경 서류 (I-485, Application to Register Permanent Residence or Adjust Status)를 미 이민국 (USCIS)에 제출하고 나면 일단 큰 한숨을 돌릴 수 있지만, 그때부터 이민자들은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 아래에 놓인다. 천운을 타고 난 사람들은 서류 제출 후 불과 3개월 만에 영주권을 손에 쥐지만 대다수는 최소 6~12개월은 기다려야 하며, 일부 운 없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추가 서류 제출 요구들을 받으며 수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근로 가능 비자 (H-1, L-1 등)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계속 일하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영주권이 나오겠지' 하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로가 불가능한 신분의 사람들은 I-485 제출에 따라 나오는 근로 허가서 (EAD)를 기다려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허가 없이 일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알음알음 캐시 잡을 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적발될 경우 대부분 추방된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팬데믹 이전만 해도 불과 2~3개월이면 나왔던 근로 허가서가 요새는 거의 12개월, 심지어 그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흔하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사정이 급한 사람들은 상원의원, 하원의원, 옴부즈만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EAD 신속 처리 (Expedite Request)를 요청하지만 이민국에게 거절되거나 묵살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민국이 현재 팬데믹과 인력 부족의 이중고를 겪고 있어 일반적인 업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곤 하지만, EAD가 나오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부터 일을 쉬어야 하는 많은 이민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냉랭한 태도에 좌절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만 해도 EAD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몇 달 안에 무급 휴가로 전환하거나 해고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11월 초에 USCIS에 전화하여 신속 처리 요청을 접수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승인도, 거절도, 추가 자료 요청도 없이 "접수 완료" 메시지 뿐. 반쯤 포기 상태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Form을 작성했다. 하원의원실에서는 "잘 받았어. USCIS에 연락해보고 알려줄게"라는 이메일이라도 있었지만 상원의원실은 아예 묵묵부답. 그래도 이민자 입장에서 미국 국회의원들이 신경을 써 줄 의사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한국 국회의원 사무실 중 중국이나 베트남, 파키스탄 이민자들의 문제 해결 요청을 접수해주는 곳이 있긴 한지 생각해보면 더욱 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떠났던 연말 휴가. 호텔 방에서 쉬던 중 갑자기 핸드폰에 낯선 알람이 떴다. 


"New Card is being produced." 


하원의원에게 이메일을 보낸 지 불과 4 영업일만에 USCIS에서 EAD 급행 처리를 승인해준 것이다. 기쁜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고, 놀라서 뛰어나온 와이프의 손을 마주 잡고 방방 뛰었다. 이제 신분 유지용 학교도 그만 다녀도 되고,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안정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으며, 집 구매도 생각할 수 있고, 부업이든 비즈니스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EAD든 영주권이든 하나라도...' 빌었던 내가 지금은 '마지막 남은 영주권도 얼른 나와라'를 기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EAD라도 일찍 나온 것이 큰 은혜이며 감사할 거리라는 것을 마음에 계속 새기려 한다. 절박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신 하원의원님이 다시 출마하신다면 소액이라도 후원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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